[시론-위철환] 손봐야 할 향토법관제 기사의 사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 일당 5억원 사건을 계기로 지역법관제, 즉 향판(鄕判) 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대법원은 수십년간 관행으로 이어져 오던 ‘향판’을 2004년부터 제도화했다. 그러나 여러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지역 토착세력과의 유착 관계로 인한 부정적 폐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그 당시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여러차례 부작용이 지적돼왔지만 대책없이 손놓고 있다가 사법불신이란 최악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대법원은 그동안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판사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전보시키지 않는 게 원칙이고 한번 근무 법원이 정해지면 그만둘 때까지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게 보통이라고 지역법관제를 설명해 왔다. 법관들의 잦은 인사이동을 줄여 재판 효율성을 높이고, 판사들의 주거와 생활 안정에도 도움이 되며,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재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법조일원화’가 전면 실시되면 40, 50대 초임 법관들이 2∼3년 단위로 전국을 옮겨 다니는 현재 인사 시스템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너무도 분명히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다면 대비책을 만들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종의 돌출 판결을 법관 개개인의 자질 내지 윤리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별 법관이 지역 토착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형평과 정의에 입각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갖춰주지 못한 사법부의 노력 부족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법원에 인사권이 집중되어 있는 현 사법 시스템 하에서 판사들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판결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 때문에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런데 ‘향판’의 경우에는 오히려 이 구조가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법관제라는 이름으로 그 누구의 견제도 없이 평생을 한 지역에서 고위직인 법관 자리를 보장받다 보니 어느 틈에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되어 무소불위의 위용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우리 헌법의 기본 원리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와는 사법체계가 다른데다 연방제 국가로 법원의 구조 또한 다르지만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건전한 판결이 나오기 위한 기본 틀이 마련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미국의 법원은 연방법원과 주법원의 이원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다른 이원적 구조 하에서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누가 뭐래도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앞으로 지역법관제를 운영함에 있어 우리 국민이 전국 어느 지역의 법원에 가더라도 정의와 형평이 살아 있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도 중요한 가치이나 적어도 판결이 최소한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적 정비가 필요하다. 대법원이 부작용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역법관제 폐지까지 감안해 개선 작업에 나섰다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들의 경우 순환보직이 원칙이지만 이번 사건은 같은 지역 출신들이 상하관계를 이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부당한 기소와 구형이 이뤄졌다. 이번 문제를 향판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향검(鄕檢)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많다. 오히려 검찰의 잘못이 더 크다는 여론이 많은 듯하다.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특히 피고인의 죄를 물어야 할 검찰이 도리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고유예 판결을 구하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허 전 회장을 뒤늦게 석방한 뒤 벌금을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국민의 신뢰는 떨어졌다.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지역 출신 검사들이 한꺼번에 한 지역에 몰리지 않도록 인사에 각별한 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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