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고향과 그 속의 소년소녀를 그리워하다… 원로 서양화가 박돈 그림인생 70년 회고전 기사의 사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작가는 열일곱 살 소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그림 잘 그린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밑거름이 됐다. 그렇게 붓을 잡은 지 70년이 지났다. 원로 서양화가 박돈(본명 박창돈·86) 화백. 해주예술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광복 이후 부산 동아중고교와 서울 한성중고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했다.

시류와 타협하지 않는 그는 성격이 깐깐하고 올곧기로 유명하다. 미술교사로 재직할 때 교장의 잔소리와 간섭에 보란 듯이 사직서를 내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고 내뱉는 괄괄한 성품이지만 작품은 한없이 동화적이고 따스하다. 어머니 품처럼 고요하고 포근한 그림으로 한국적 서정을 듬뿍 전해준다.

1953년부터 60년까지 국전 특선 3회와 입선 5회로 화단에 이름을 알린 그가 더욱 유명세를 탄 것은 70년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그의 작품을 사들이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그는 80년대 미술시장을 사로잡았다. 그림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인기를 끄는 원로 작가도 드물다.

화업(畵業) 70년을 회고하는 작품전을 여는 그를 지난 주말 서울 관악구 남부순화로 작업실에서 만났다. 스스로 “고집 세고 열이 많은 작가”라고 칭하는 그는 반바지와 반팔 옷차림으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화가들 중에는 조수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박 화백은 그림생활 70년간 오로지 혼자서 작업해왔다.

“내가 성질이 급해서 남에게 그림을 못 맡겨. 조수들을 믿을 수도 없고. 전시장에 걸리기 전에 내 작품에 대해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게 싫어서 그동안 작업실에도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어. 이 기자가 처음 온 거지.” 혼자 고집스럽게 작업하던 그가 이번 회고전을 앞두고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일까.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을 때 그는 흔쾌히 응했다.

박 화백의 그림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화면에는 소년과 소녀, 백자항아리, 석양 등이 등장한다. 소년은 말 달리며 피리를 불고, 소녀는 꽃과 오리를 머리에 이고 있다. 소년은 작가 자신이며 소녀는 그가 흠모했던 첫사랑이다. 다분히 목가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이다. 시간도 잠시 멈춘 듯하다. 고향에 대한 추억을 향토색 짙은 작품으로 아련하게 담은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청작화랑에서 4월 20일까지 여는 ‘박돈 회고전-그림생활 70년’ 전시회에 이제는 갈 수 없는 북녘 고향과 그 속의 소년소녀를 서정적으로 그린 유화 작품 30여점을 내놓았다. 1987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청작화랑의 압구정로 대로변 이전 기념전이다. 어지러운 광속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그림들을 걸었다.

박 화백의 그림은 유화이지만 벽화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물감을 조금씩 묻혀 수십 번 칠해 마티에르(질감)를 두툼하게 하는 기법으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그는 “요즘 전통이라는 게 사라졌어. 원로든 신인이든 다 편리한 대로 작업하는 거지. 그래가지고 예술이 제대로 되겠어? 죽을 때까지 정신 똑바로 차려서 그려도 부족한데 말이야”라고 쓴소리를 했다(02-549-311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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