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박영범 직업능력개발원장 “학력보다 현장 능력으로 인재 가려낸다” 기사의 사진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대졸자 채용에서 이공계 비중을 대폭 높이고 나서자 국내 대학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대학들이 돈이 적게 드는 인문계 위주로 대학 정원을 늘리다 보니 인력의 수요와 공급 사이에 불균형이 심각해진 것이다.

비단 4년제 대학뿐만 아니라 2년제 대학과 특성화고교 등도 변화된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공급자 중심의 인력양성 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NCS 학습 모듈 개발에 나섰다. 이 개발 작업의 실무 대부분을 맡고 있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KRIVET) 박영범 원장을 만나 NCS 체제의 의미와 이의 정착을 통한 능력중심 사회 구축을 위해 교육기관과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6일 서울 청담동 KRIVET 사옥 원장실에서 진행됐다.

정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부터 개발한 NCS 254개와 NCS 학습모듈 468개를 최근 공개했다. NCS와 NCS 학습모듈은 무엇인가.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분류 가능한 직무 833개 가운데 777개의 NCS를 개발했거나 개발할 계획이다. NCS 학습모듈은 직무를 구성하는 10개 안팎의 능력단위들을 교육훈련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론 및 실습과 관련된 내용으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NCS가 능력단위와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단위요소들의 목록, 즉 텍스트라면 NCS 학습모듈은 현장 매뉴얼, 즉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777개 NCS에 대해 7700여권의 NCS 학습모듈이 나오게 된다.”

-NCS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의의는.

“이제는 학력이 노동시장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신호 기능을 이미 상실했다. 그런데도 청년과 학부모는 무조건 대학진학을 선호한다. 노동시장 역시 학력을 대체할 적절한 인재 발굴·활용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과는 구직난과 구인난의 공존, 즉 노동시장의 미스매치와 심각한 청년실업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박근혜정부는 ‘능력중심 사회의 구현’이라는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수단이 NCS체제의 구축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무엇을 아느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체제로 바꿔 가자는 것이다. NCS는 학력이나 학벌보다는 역량이 중시되는 열린 노동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습모듈이 잘 활용되면 특성화고와 2년제 대학(전문대)에서 이론보다는 현장, 공급자보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4년제 대학교에서도 졸업생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교육내용이 서서히 변할 것이다.”

-NCS와 NCS 학습모듈을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NCS 노무관리 직무를 보면 노사관계 계획, 노사관계 교육훈련, 교섭준비 등 10개의 능력단위가 나온다. 그중 단체교섭이라는 능력단위의 학습모듈을 보면 학습 1·2·3단계별로 단체교섭 규칙 제정하기, 단체교섭 진행하기, 협약 체결하기 등의 능력단위 요소들이 제시돼 있다. 학습모듈의 내용은 이 요소별로 노동3권, 단체교섭권, 전임자 급여 금지 등 필요지식, 수행(학습)내용, 교수·학습 방법 및 평가 등을 담고 있다.”

-NCS의 현장 적용사례와 성과, 그리고 나타난 문제점은.

“NCS는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인 2008년부터 충북반도체고, 신구대학, 아주자동차대학 등을 대상으로 2∼3년간 시범 실시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충북반도체고는 반도체장비 유지·보수 기술자 양성을 목표로 반도체 기계과와 반도체 전자과를 반도체과로 통합해 융합기술을 갖추도록 하는 NCS 기반 교육과정을 운영해 2년 연속 전원 취업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반도체장비는 산업체의 지원을 받았고, ㈜하이닉스반도체 소속 전문가 6명을 시간제 교원으로 초빙했다. 2012년 NCS 기반 교육과정을 도입한 신구대학 조경학과의 경우 도입이전에 비해 취업률이 약간 상승했고, 학생 만족도와 산업체 및 졸업생의 평가가 높아졌다. 특히 교육내용의 산업현장 일치도는 5점 만점에 3.12점으로 과거의 2.53점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반면 교원의 역량과 역할, 학습모듈교재의 수준은 미흡하다. 우리나라 2년제 대학의 경우 교수들이 모두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만, 현장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수업이 이론중심으로 흐르기 쉽다. 반면 독일, 스위스, 호주 등의 경우 전문대 교수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거의 없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 결국 현장 경험에 바탕을 둔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원연수체제 구축, NCS 기반 교육환경 구축을 위한 실험실습 기자재 확보 등이 절실한 과제이지만, 진척이 더디다.”

-지금까지 학교 밖 학습경험 즉 인턴십 프로그램, 특성화고교의 2+1 체제 등이 실패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의 97%가 중소기업이고, 이들 대부분이 인력부족에 대해 땜질식 충원에 그치고 있다. 대기업도 스스로 인재를 키우는 데 인색하다. 따라서 직업훈련 인프라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개별 기업의 한계를 보완할 업종별 협의회나 사업주 단체도 대표성과 전문성 부족으로 산업수요를 결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 지원도 재직자 단기양성 훈련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청년대상 양성 훈련은 부실한 실정이다. 학교의 경우 교원들의 실무 경험이 부족하고 실습시설과 기자재가 부족하다. 특성화고의 2+1체제는 학부모들이 조기 취업을 싫어하는 성향 탓에 실패했다. 학생 입장에서도 개인이 습득한 다양한 학습결과가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통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학교 밖 교육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NCS와 학습모듈은 지금 단계에서 특성화고와 2년제 대학을 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교육 내용과 산업현장의 수요가 동떨어져 있기로는 4년제 대학교도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NCS가 4년제 대학교들의 구조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교를 설립·운영하는 학교법인들의 퇴출절차가 합리화되기 이전에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법인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지 않고는 망할 수도 없게 돼 있는 제도 탓이다. ‘부실’ 판정을 받은 대학교는 설립인가가 취소되더라도 소송을 하면 이기게 돼 있다. 그래서 실제로 문을 닫는 대학교들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고, 자발적이고 본격적인 구조조정도 대학진학률이 대폭 더 낮아져야 이뤄질 것이다. 그때까지 현실적 대안은 차고 넘치는 대학들을 전문대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거나 졸업생을 취업시키지 못하는 지방대들부터 스스로 전문대학으로 바꾸는 곳이 생길 것이다. 최근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왔는데 호주의 170여개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대학교는 40여개에 불과하다. 반면 인구가 호주의 두 배밖에 안 되는 한국에는 350여개의 대학교가 난립해 있다. 또한 부실대학이 아니더라도 상당수 대학교들이 취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NCS와 학습모듈을 활용할 것이다.”

-NCS가 교육기관이 아닌 기업들에게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직무분석과는 어떤 관계이며, 채용·배치·승진관행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가.

“NCS는 근로자 경력개발 등 인적자원관리의 기본 자료다. 기업들은 NCS를 직무분석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직무분석은 역량 중심의 직무급을 설계하는 기반이 된다. 기존 직무분석은 주어진 직무별로 지식, 기술, 태도를 제시한 반면, NCS의 직무는 크게 24개 대분류, 76개 중분류, 213개 소분류, 그리고 833개 세분류로 구성돼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근로자가 한 개의 직무만을 수행하기보다 융합적 유사 직무들을 수행하기 때문에 NCS의 개발과 활용은 중소기업에게 더 절실하다. 더 나아가 직무 간 통합을 통해 연구기획 평가사, 연구실 안전전문가, 플로리스트 등의 틈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한편 NCS 학습모듈은 기업에서 채용, 직무배치, 재교육 및 승진 등에 활용될 수 있다.”

-교육기관이 현장교육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 협조를 산업체로부터 잘 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2011년부터 3년 연속 취업률이 2년제대 전국 1위인 영진전문대는 맞춤형 주문식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했다. 365개의 국내외 기업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철저하게 기업에서 요구하는 내용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특성화고와 전문대들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업들의 업종별 협의회가 13개, 지역별 인적자원협의회가 14개 있지만, 전자업종을 제외하고는 체계적인 직업훈련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산별노조를 비롯한 노조의 참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노조는 성과배분을 둘러싼 소모적 다툼에서 벗어나 성과를 증진시키는 상생적 노사관계를 이루기 위해 직업훈련과 산재예방에 눈을 돌리고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사용자에게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NCS 체제 구축과 능력중심 사회 구현을 위해 각계가 맡아야 할 과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인식전환이다. 인적 자원 개발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 말이다. 정부는 국가자격체계(NQF)를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NQF는 국가자격과 국가인정자격, 그리고 민간자격, 민간자격들의 통합자격 등을 모두 흡수한 것을 일컫는다. 이 체계 안에서 근로자는 그가 속한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역량에 따라 시장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지필 및 실기시험 위주의 검정형 자격 대신 과정형 자격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과정형 자격제도란 직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현장 책임자나 전문가가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주관적 평가이므로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가 전제이긴 하지만, 주관적 평가를 두려워해서는 연공급 중심의 노동시장 관행을 혁파할 수 없다. 과정형 자격제도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들에서 발달해 있다. NCS 체제는 이런 일련의 개혁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박영범 원장은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1년 KRIVET 원장으로 부임했다. 박 원장은 NCS 개발을 위해 교육부 및 고용노동부와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두 부처 간 갈등이 빚어질 때에는 항상 일을 중심에 두고 판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아울러 대학교수, 특성화고 교사, 산업체 종사자 등 483명의 개발진을 사안별로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 위해 잦은 주말 근무를 감내해 준 KRIVET 연구위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는 임금제도와 인력정책에 관해 많은 논문을 썼고,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방안을 설계하기도 했다.

△서울(58) △서울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 △ 한국고용노사관계 학회장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현)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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