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성] 황제노역 논란의 이면 기사의 사진

개인 능력보다 업무 분담에 따라 유기적으로 각자의 능력을 실현하는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보편적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우리 사회는 구토 유발 인자로서의 팀플레이의 실효성을 제대로 경험했다. ‘황제 노역’이 그것이다.

이른바 향판과 향검,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온라인 게임의 정글러와 유사한 역할을 맡은 연결책 등이 이루어낸 그들만의 아름다운 팀플레이는 ‘봉투붙이기’라는 노역에 대해 일당 5억원이라는 세계기록을 만들어냈다. 재화가 노동의 가치가 된 이 시대에 재화의 변제를 노동으로 대신하는 것은 인간의 덕목인 노동의 가치를 재화와 대등하게 인정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딱히 나무랄 수는 없으나 이번 경우는 해도 너무했다.

팀플레이의 감동이란 것은 팀플레이를 이루어내는 당사자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들이 그것의 실효성과 감동을 공유하는 지점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이번 황제 노역 논란은 팀플레이의 당사자들이 ‘감동’이라 쓰는 것을 우리 사회가 ‘경악’이라 읽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황제 노역 당사자의 격리된 공간은 마치 제우스에 의해 축출된 크로노스의 처소(處所) 헤스페리온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과일은 재배하지 않아도 스스로 싹을 틔우고 대지는 스스로 만물을 생산해 내는 행복한 섬, 노동에서의 해방이 구현되는 낙원 말이다. 그렇다면 이 허망한 판결을 확정하고 항고를 포기한 당사자들은 제우스인 셈이다.

인신(人身)의 구속은 신의 권한이었다가 국민의 합의에 의해 공인된 기관과 그에 소속된 인간에게 이양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사태 인식과 판결이 천칭(天秤)의 균형을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권한을 이양해준 국민의 매서운 시선을 도외시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국민의 ‘법 감정’이라는 것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팀플레이의 한 당사자는 비난의 화살이 겨누어지자 단순히 불찰이었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그것이 불찰이 아니라 권력과 재화를 향해 촉수를 곧추세우는 본능이요, 위기상황에 선수를 치면서 꼬리를 잘라내는 교묘한 본능으로 비춰질 따름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국민들에게 어찌 해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부정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응징은 그것 자체로 정의의 승리로 아름답게 끝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른바 로고스나 에토스와 변별되는 한 사회의 파토스적(情念的) 확신이라는 것이 형성돼 개인 혹은 집단의 정당한 성공과 감동조차도 부정한 밀약의 산물로 확정해 버리는 집단적 병리현상이 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악성 바이러스로 작동하면서 한편으로 변종 바이러스를 양산해낼 우려가 있는 것 역시 이런 까닭에서다.

황제 노역 논란의 여파는 파토스적 확신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인식하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기괴한 도그마로 확산될 우려가 있어서 더욱 걱정스럽다. 뿐만 아니라 황제 노역이라는 실체적 현상이 ‘부당하게 작동하는 팀플레이 집단’이라고 하는 일종의 메타 주체(예를 들어 나치즘에서 주장하는 유대인의 음모)로 자리잡아 우리 사회에 공포를 던져주는 편집증적 요인으로 확대되면 사회의 시스템은 붕괴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재앙이 시작된다. 이와 유사한 혹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제든지 메타 주체로서 사후적(事後的)으로 작동해 우리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황제 노역 논란의 처결이 또 다른 밀실 팀플레이의 은총을 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처결의 전 과정을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종성 교수(방송통신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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