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농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준다면 기사의 사진
“농촌 주민에게 국토보전 대가로 월 50만원 주면 실업과 농촌 공동화 해소 가능하다”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일부에게 기초연금을 줄 수 있을지, 어떻게 줄 것인지로 정계가 시끄럽다. 차등지급 여부, 차등기준의 국민연금 연계 여부, 국민연금의 신뢰성 위기 등의 쟁점들이 꼬리를 문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종전의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버스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이런 의제들은 선별적, 혹은 보편적 복지, 또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것이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초 공약대로 노인 전체에게 주는 것이라면 노인에 대한 기본소득이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전 국민, 또는 특정 범주의 대상 전원에게 차별 없이 삶의 기본적 필요를 해결할 소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본 적 없는 대다수 국민에겐 얼핏 황당무계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기본소득이 20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됐다. 18세기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페인은 미경작 상태의 토지는 ‘인류의 공유재산’이라는 생각에서 토지 사유제도가 확립된 사회일지라도 그 토지로 인한 이익의 상당부분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리히 프롬, 버트런드 러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본소득 개념이 좌파의 전유물 같지만, 좌·우파를 초월하는 찬반 입장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강남훈 한신대(경제학) 교수에 따르면 제임스 미드, 제임스 토빈 같은 진보주의 학자뿐만 아니라 밀튼 프리드먼, 제임스 뷰캐넌, 폴 사무엘슨 등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기본소득을 옹호했다.

정부는 국가재정의 불안을 들어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불안의 주범은 불요불급한 국가사업, 기업을 지원하는 특혜성 자금이지 복지지출은 아니다.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 정부는 전체 지출 중 13.1%를 사회보장비에 할애해 전체 회원국 중 그 비중이 가장 낮았다. OECD 평균은 35.6%였다. 반면 우리 정부의 경제 활성화 지출 비중은 20.1%로 OECD 평균(10.5%)의 두 배에 육박했다.

기본소득 도입의 최대 장벽은 역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고정관념이다. 돈을 거저 주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런던에서 2009년 13명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470만원씩의 현금을 나눠주는 실험을 한 결과 1년 후 11명이 더 이상 거리를 배회하지 않고 학원에 등록하거나 요리를 배우는 등 자립의 길로 가고 있었다. 국내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선별복지가 오히려 빈민을 실업자로 묶어 놓는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경제 활성화 지원예산을 한꺼번에 줄일 수 없다면 우선 농촌에서부터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 시행초기에는 별도 재원 없이 보조금 제도의 개혁만으로도 가능하다. 중요한 차별성은 생산자들에게 주던 기존 보조금의 꼬리표를 떼어내 농사를 짓건 말건 주민에게 직접 주는 것이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은 13조5344억원이다. 2010년까지 등록된 농어업인은 약 300만명이다. 이 돈과 다른 부처들에 산재한 농업·농촌보조금을 농촌주민들에게 나눠주면 예컨대 월 50만원씩 돌아간다. 사실 지금 농촌에서는 ‘눈먼 돈’이 횡행하고 있다. 갖가지 명목의 생산 보조금이 농기구 업계와 일부 농협 직원, 그리고 ‘다방 농민’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농기구, 빈 축사, 망가진 온실. 직불보조금의 부정수급 사례들을 보라.

땅, 마을, 그리고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폐허가 된다. 농촌 주민은 그곳에서 살기만 해도 국토와 환경의 보전이라는 사회적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대가로 20세 이상 농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도시 빈민과 청년 실업자들이 농촌으로 향할 것이다. 실업과 도시빈민 문제, 농촌 공동화현상을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사람은 런던에서의 노숙인 실험이 말해주듯 본성상 놀기만 할 수는 없어서 결국 농사든, 재생에너지든, 사회적 기업이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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