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구름빵’의 진실 혹은 교훈 기사의 사진

“그림책 ‘구름빵’이 큰 성공을 거뒀는데도 작가가 얻은 수입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한국에서 조앤 롤링이 나오길 기대할 수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문화융성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가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트위터를 통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백희나씨의 ‘구름빵’을 문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 사례로 인식한 듯하다.

‘구름빵’은 2004년 첫 출판된 이후 40만부가 팔렸으니 이례적인 케이스다. 이듬해 작가는 권위 있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책의 정가가 8500원이니 통상적인 저작권료 10%를 계산하면 3억4000만원의 인세수익이 생긴다. 여기에다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인형 등 파생상품까지 감안하면 수입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의 수중에 떨어진 돈이 1850만원에 그쳤다.

저작권 계약의 중요성 일깨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단은 작가 초년생이었던 백씨가 모든 저작권, 심지어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 출판사에 몽땅 넘겨버린 계약서에서 생겨났다. 짐작컨대 백씨는 계약방식이 못마땅하긴 해도 거절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받은 850만원은 책 1만부 판매 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책을 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책을 1만부 판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출판사는 전집으로 책을 엮으면서 관행대로 매절계약을 했고, 저자 또한 상업적 성공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심각한 불공정 거래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백씨의 진술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계약서에 서명을 한 1차적인 책임은 내게 있다”고 인정했다. 이후 백씨는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고 권리를 적극 챙기고 있지만 자신의 출판사에서 낸 창작집 ‘달 샤베트’로 인해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어느 연예기획사에서 이 책 이름을 걸그룹 명으로 쓰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작가는 “책의 주요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혼란을 준다”며 반대했건만 얼마 후 TV에 나온 6명 젊은 여가수의 이름은 ‘달 샤베트’를 변형한 ‘달샤벳’이었다.

창작자 존중하는 문화 조성돼야

‘구름빵’ 사건에서 느끼듯이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멀다. ‘사적 계약의 자유’라는 원칙에서 보면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백씨의 경우 한국과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작가이니 계약에 임한 그의 판단력 또한 명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출산후유증을 딛고 내놓은 그림책이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출판사도 ‘예상외’의 예우를 할 수 있는데도 전시에 필요한 10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데 그쳤다. 법적 책임은 없어도 사회적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중요한 건 미래다. ‘구름빵’ 사건 이후 신인작가의 부당계약을 막기 위해 마련 중인 ‘표준계약서’도 권장의 기능을 가질 뿐 구속력이 없다. 결국 모든 결정은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무릇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지식과 판단력은 학교 교육에서 생성된다. 저작권은 규범보다 문화로 접근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달 샤베트’ 사건의 경우도 “책 제목은 독점의 영역에 두지 않는다”는 판례를 따라가면 ‘달샤벳’이라는 이름을 써도 무방하다. 그래도 법이 다가 아니지 않은가. 안면마비의 고통 중에서도 “환경오염으로 달이 녹아내린다”는 스토리로 아이들의 감성을 적신 작가의 열정을 안다면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들의 창작은 우리 모두의 축복”이라는 생각으로 충만해야 문화융성의 꽃이 피어난다. 그들을 아끼고 보호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언제 또 ‘제2의 구름빵’이 등장할지 모른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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