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도원욱]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 기사의 사진
최근 현직에서 은퇴한 후 지구촌 곳곳을 다니시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 한 목회자분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았다. 손녀를 보려고 유치원을 찾아가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오는 그 아이를 두 팔에 안을 때 마치 천국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하셨다. 가정에 천국이 있다.

죽음의 병-가정 폭력과 학대

봄꽃이 유난스러운 이 계절에,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다름 아닌 부모들의 폭력과 학대로 목숨까지 잃었다. 그야말로 잔인한 계절이다. 친구들과 소풍 가는 게 소원이던 아이를 죽기까지 욕하고 발길질을 해댔던 그 사람들은 부모라 불려져서는 안 된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다. 짐승들도 그런 짓은 안 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아이들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지켜보던 온 국민이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겨우 24개월 유아의 시신이 버려진 쓰레기봉투 안에서 나왔다. 부모들은 뻔뻔하게 실종신고를 했다. 후진국이나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떡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인터넷만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간파된다. 지난 2008년에서 2012년까지 5년간 경찰청에 접수된 존속살해가 287건이며 가정 내 상해 및 폭행은 2500건이다. 친족 간 범죄를 합하면 2만건이 넘었다. 거의 1주일에 1건씩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에 살인이 발생한다. 몸살이 아니다. 금수강산이 죽음의 병이 들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 중에는 아예 무반응을 자처하는 이도 있다. 험한 소식을 많이도 듣고 살며,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속 편할 때가 있다. 그러나 외면하고, 비판하고, 비관하는 것만으론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암은 도려내야 한다. 더러운 것은 씻어내야 한다. 무고한 피를 흘린 아이들의 억울한 생명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온 나라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통즉불통(通卽不通) 불통즉통(不通卽通)이란 동의보감의 명언처럼 원활치 못한 소통이 질병의 원인이다. 가족 구성원 간의 막힘 없는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양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의 진공상태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나의 죄’ 고하며 울부짖을 때

생명의 주관자 되신 창조주께서 만물에게 부어주신 모성(母性)이 인간에게 결핍되었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소중하게 다루기는커녕 학대와 폭력을 일삼아 죽이며, 굶겨 죽인 아이를 쓰레기 더미에 내다 버리다니, 북녘 땅에서 굶어 죽는 이들만으로 모자란단 말인가. 정녕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 한반도는 과연 어떤 곳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무서운 시대의 징조라 아니할 수 없다. 한강의 기적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 오는 사이 어느새 탐욕과 배금주의가 온 나라에 암세포를 퍼뜨렸다. 자기 생명을 잃게 되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하셨건만!(마 16:26)

지금은 어느 때보다 교회가 다니엘과 느헤미아처럼 이 모든 것이 ‘나의 죄’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어 은혜를 구해야 할 때다. 예수의 피로 이 땅을 적셔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없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 경은 ‘이 땅에 천국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은 없다’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을 두 팔에 안아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길 기도한다(또 지면을 빌려 진도에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그 유족들을 그분의 두 손에 의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무너진 가정 뒤에서 울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찾아가 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믿는다. 부활, 이 나라의 가정에 부활을 주시는 참 소망의 5월을 기대한다.

도원욱 한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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