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알 게 뭐야’ 기사의 사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이 땅에 드리운 어둠이 지극하다. 한 주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참담하다’이다. 부활절에도 교회는 차마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없었다. 애통해하는 이들 앞에서 축제의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덤의 시간은 무작정 길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통탄할 사건이 반복되어야 할까. 국민들은 보았다. 재난 앞에서 정부와 관료집단이 얼마나 허둥대는지를. 필사적으로 생명을 구해야 하는 시간에도, 책임 있는 이들은 책임 추궁을 염려해 몸을 사렸다. 실종자 가족들의 피맺힌 울부짖음은 경청되지 않았다.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할 관련기관들은 가리산지리산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매스컴은 가십거리를 수집하고 남보다 먼저 그것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관료들은 높으신 분들의 행차를 알리다가 현장에서 쫓겨나곤 했다. 이 사이에 가물거리던 생명의 불꽃은 수그러들었다.

세월호 침몰이 말해주는 것들

이현주의 동화 ‘알 게 뭐야’가 떠오른다. 곧게 뻗은 길 위로 모양이 똑같은 두 대의 자동차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앞차는 밀가루를 실었고 뒷차는 시멘트를 실었다. 두 차의 운전사는 길가에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곤 각자의 차에 올라 갈 곳으로 갔다. 나중에 그들은 차가 바뀐 것을 알았지만 그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에라! 알 게 뭐야! 내 건가?”였다. 시멘트차 운전사는 집을 짓는 공사장에 물건을 배달했다. 공사장 인부들은 배달된 게 시멘트가 아니라 밀가루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일을 계속했다. “에라 알 게 뭐야! 내 집인가?” 밀가루차 운전수는 단골 과자가게로 물건을 배달했다. 사람들은 그게 시멘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사태를 되돌릴 생각이 없었다. “에라 알 게 뭐야! 내가 먹는 건가?”

이 서글픈 동화는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들려준다. “어느 날. 두 개의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이 무너져 그 밑에 깔린 불쌍한 아이들의 등뼈 부러지는 소리와 과자 가게에서 손님들의 이빨 부러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비극이다. 하지만 이 동화의 결말은 더욱 섬뜩하다. “운전사들은 그 후에도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어 달나라에 땅을 무지무지하게 샀고, 그래서 정부로부터 나라 땅을 넓힌 공으로 훈장까지 받았다더라.” 이것은 동화이다. 그러나 그 동화에는 우리의 현실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가는 이들이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현실 말이다. 알 게 뭐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 파렴치, 무책임, 무사유가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오늘 우리 문명의 자화상이 아닌가?

우리 문화·삶에 대한 의문제기

영혼 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게임에 방해된다 하여 28개월 된 아들의 코와 입을 막아 죽게 하고 유유히 인터넷 게임에 빠진 철없는 아빠, 말을 안 듣는다고 아이를 학대하다가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사람들,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제일 먼저 탈출한 후 병실에서 지폐를 말렸다는 선장. 모두 남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저 남녘에서 들려오는 피울음소리는 우리에게 사람됨에 대해 묻고 있다. 사람은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함을 통해 사람다워진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의문제기이다. 아니, 생명 가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세상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표징이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제는 기적 혹은 대박 담론을 내려놓아야 한다. ‘알 게 뭐야’라는 말도 우리 의식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저 무고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해 우리가 표할 수 있는 최대의 애도이다.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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