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산업화 산물 학벌주의·빨리빨리 정신부터 버려야” 기사의 사진

플라타너스가 양쪽으로 울창하게 드리운 5㎞가량의 진입로를 지나 청주시내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20∼30분쯤 가다 보면 교사 양성의 요람인 한국교원대가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충북 청원군 강내면이지만 오는 7월 청주시로 통합된다. 청주는 예로부터 교육의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교원대가 청원군에 자리 잡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유치원·초등·중등 교원 양성과 현직 교원연수, 교육 연구 등을 목적으로 1985년 3월 개교한 교원대가 30년이 됐다. 박근혜정부도 역대 정부처럼 선행학습 금지법 등을 통해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백년대계인 교육 바로세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4일 김주성(62) 교원대 총장을 만나 현 교육의 문제점과 대학구조조정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공교육이 위기다. 연간 사교육비가 19조원에 달할 정도로 학부모 부담이 크다. 과거 정부마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교육 위기와 사교육은 직접적 연관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공교육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서 사교육이 공교육 기능을 대신하는 거다. 공교육의 공동화 현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5·31개혁안 때부터 노력했는데 아직 성공을 못한 것 같다. 산업화시대에는 배고픔을 근거로 한 희망의 교육, 이른바 학벌주의 교육이었다. 대학만 가면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금욕적으로 수도생활 하듯이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넘어가면서 과거와 같은 학벌주의로는 희망의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이 됐다.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 현장이나 국민의식이 여전히 학벌주의에 머물러 있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교육개혁 폭이 넓었고,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해결책은 속도를 좀 늦추고 폭을 좁히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구조개혁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겨울이 짧아지고 있으니 서구처럼 여름방학을 길게 잡고, 9월 학기제로 바꿔 여름에는 자연에 나가 놀게 해야 한다. 아이들의 품성을 키우고 젊음의 욕구를 풀어주는 쪽으로 구조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수시로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교사들에게 다시 수업권과 학생지도권을 돌려주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보람 있는 생활을 한다면 상당 부분 현 시대에 맞게 바뀔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교육 경감 방안인 선행학습 금지법은 어떻게 보는지.

“선행학습 금지법의 성공여부는 국민의식에 달려있다. 국민들이 선행학습을 요구하게 되면 어디선가 이뤄진다. 법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의식의 문제다.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너무 관리하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능력에 넘치게 살려고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 자기 능력에 맞춰 살도록 한다면 선행학습을 굳이 할 필요도 없고 욕구도 없어지게 된다. 선행학습 욕구는 살아있는데 법으로 규제하면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거다. 정부가 급한 마음에 법으로 규제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본질적인 개혁아이템들이 나와야 한다. 산업화를 일으킨 것은 ‘빨리빨리 정신’인데 이게 교육에도 들어와서 점수 올리는 쪽으로 갔다. ‘빨리빨리 정신’이 극복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입시제도가 정권마다 바뀐다.

“교육이 너무 정치화돼 있는 게 문제다. 교육이 정치화된 것은 학벌주의, 대학 보내기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고,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 시대부터 국민들한테 끊임없이 새로운 약속을 했다. 정치적 요구들을 좀 더 늦춰야 한다. 입시제도를 다양화시킨다고 하다가 현 정부 들어 너무 많으니까 줄인다고 하지만 늘리는 거나 줄이는 건 똑같은 효과가 있다. 변화가 있을 땐 반드시 학원으로 가게 돼 있다. 적응되면 학원 수요가 떨어진다. ‘빨리빨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사교육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29%인 스위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가경쟁력 1위를 수년째 지키고 있다. 우리는 학벌문화를 타파한다고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산업화시대에 달콤한 약속을 학벌주의가 많이 해결해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러한 기준들이 물질적인 것들이었고, 실질적이고 정신적인 행복이나 품위 있게 산다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껴가는 중이다. 품위 있게 살고 능력껏 살면서 내가 정하는 기준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하면 그때는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의해 대학을 가거나 학벌을 좇는 문화는 없어질 것이다.”

-교육부가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명 줄이는 내용의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각 대학들이 비상이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원감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쓰나미 현상이다. 우리는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10년 후에 고등학교 졸업생수가 40만명이 되는데 대학정원을 16만명 줄여 40만명으로 하는 것은 100% 대학 간다고 가정하고 만든 숫자다. 지금 대학진학률이 70%로 떨어졌는데 10년 후에도 30% 정원이 남는다. 더 줄이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정원축소 문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그래도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방대학들은 학생들이 빠져나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무너질 텐데 남쪽으로 갈수록 10% 정원감축은 기본이 되고 있다. 우리 주위의 대학들도 10% 감축으로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유일한 교원 종합양성대학이어서 그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교원대가 대학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을 묘책은 무엇인지.

“특성화에 따른 재정지원사업이 대학들을 특성화시키기보다 대학 속에서 특수한 사업을 키우라는 쪽으로 가고 있어 문제다. 거점대학이나 큰 대학들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가고, 지방대학은 교육 중심으로 가고, 특수목적대학들은 특수목적에 맞는 대학으로 구분 지어서 대학들이 특성화되는 쪽으로 대학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대학들을 줄 세워놓고 슬림화하고 군살 빼라는데 안타깝다. 다른 대학은 군살 뺀다는데 우리는 근육을 잘라내고 뼈대를 깎아내야 할 처지에 와 있어 굉장히 어렵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놓고 우리 사회가 좌우로 나뉘어 시끄러웠다. 총장께서 신문 기고를 통해 친일·독재 미화 지적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했다고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반발하기도 했는데.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정치화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는 정치화가 많이 돼 있어 정당에 따라 다르게 보고, 그게 교과서에 반영돼 정치투쟁처럼 돼 버렸는데 비애를 느낀다. 정치적 입장이 아닌 헌법 정신에 입각해 국민정신을 유도하는 쪽으로 교과서는 집필되어야 한다. 검정과정에서 일단 통과되면 선택권자에게 맡겨야지, 시민단체들이 데모하고 개별 학교를 협박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한 곳만 옹호한 것으로 본 것은 표면적이다. 물론 대학 교과서는 학문의 자유를 위해 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쓰여야 마땅하다.”

-총장께서는 교육 개념을 교사로 한정하지 않고 평생교육기관이나 교육행정분야 취업으로 넓히겠다고 했다. 초·중·고 교사를 양성한다는 교원대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교원대 설립목적은 교사양성도 있고, 연수도 있고 연구목적도 있다. 연구인력도 나와야 하고, 교육행정가도 나와야 한다. 학교와 비학교가 명확히 구분돼 있는데 교육이 발전하면서 현재는 상당부분 차이가 완화돼 가고 있기 때문에 점차 교육의 폭이 기존 학교에 둘 수 없는 시대가 오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교육을 깊고 넓게 보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95%가 주로 교사로 나가고 있어 지금은 벗어날 수 없겠지만 관심 있는 학생들에겐 다른 길을 열어주고 싶다.”

-4년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가장 큰 화두는 인성문제다. 공부를 가르치는 교사·학교라기보다 품성을 끌고 가는 역할들을 교사가 하고, 학교가 해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행복주의 교육을 내세웠는데 굉장히 중요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 행복의 개념은 쾌락이었는데 이제는 행복주의 인성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 내 삶에 대한 품위를 누릴 수 있는 부분을 많이 개척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인성교육센터로 지정돼서 그 부분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창의성 교육이다. 이제는 맞춤형 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스마트 기기 등 IT 분야 장점을 갖고 있어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교육 중점연구소로 지정돼 이스라엘 회사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교육원조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한국의 교육은 희망의 교육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부만 잘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 후진국들이 한국처럼 잘 살려면 희망을 주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빨리빨리 교육’이 전 세계 후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욕의 할렘가까지 수출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살면 안 된다면서 꿈을 키워주는 교육 노하우를 전 세계에 전해주려 한다.”

교원대는 올해 설립 30년을 맞아 홈커밍(homecoming) 행사를 통한 유대강화와 함께 오는 10월 초 ‘스마트 교육’을 주제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북아 7개국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한국의 미래, 교육으로 열겠다’는 교원대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교원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 보였다.

김주성 총장은

교원대 마지막 직선제 총장으로 선출돼 2012년 3월 제9대 교원대 총장에 취임했다. 교학사 발행 한국사 교과서 채택 무산을 비판하는 기고를 일간신문에 실어 일부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 반발을 살 정도로 할 말은 하는 소신파. 지난해 국립대학 운영성과목표제 평가에서 교원양성대학 11개 국립대학 중 최고등급인 A등급을 받아 4억600만원의 국고지원금을 받았다. 2012년부터 2년 연속 교육역량강화 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1952년 대전 출생 △경기고, 한국외대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 정치학박사 △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계시민교육자문위원 △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고문 △현 새교육포럼 공동대표

청원=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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