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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오승은] 크림사태와 민족자결주의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크림사태와 민족자결주의 기사의 사진

동유럽에는 왜 그렇게 민족 분규가 잦은 것일까.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정식 명칭은 유고슬라비아 해체 전쟁)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터진 크림 사태는 이런 의문을 들게 한다. ‘유럽의 화약고’라는 꼬리표가 암시하는 것처럼 동유럽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폭력 인자라도 각인돼 있는 것일까.

동유럽 사람들의 유전자보다는 베르사유협정, 더 정확히 베르사유협정의 한계성이 좀 더 신빙성 있는 답이 될 것이다. 올해로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니 그 종전 협정인 베르사유협정이 채택된 지도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합스부르크와 오스만튀르크 제국 지배하에 있던 동유럽 약소민족들이 민족자결권을 행사하고 독립국가를 선언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세워준 베르사유협정. 그 협정 덕분에 6500만명의 동유럽 사람들이 500년이 넘는 제국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의 주인이 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때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게 됐다.

문제는 베르사유협정에서 약속된 민족자결주의가 동유럽 모든 민족에게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6500만명이 독립국가 수립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이 또 다른 2500만명은 자신의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소수민족이 돼 2등 시민으로 살 운명에 처하게 됐다. 민족자결주의가 지상명제가 된 시대에 당연히 이들 2500만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지상명제를 실현하려 들었다. 동유럽에서 민족 분규라는 결코 끝나지 않는 도미노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동유럽 민족분포상 이들 2500만명이 민족국가 수립의 꿈을 평화롭게 이룩할 수는 없는 구조이다. 이들 소수민족은 한 국가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헝가리 민족은 세르비아에도 살고 루마니아에도 산다. 또한 많은 경우 한 국가 내에서도 특정 지역에 군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민족자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국경선 안 여기저기에 또 다른 민족국가 수립을 허용하게 되는 꼴이 된다. 또한 이들 소수민족이 자민족의 영토라고 선포한 지역이라 해도 이들 소수민족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민족청소’라도 감행해야 순혈 민족국가의 꿈이라도 꿔볼 수 있는 다문화·다민족의 공간이 바로 동유럽이다. 바로 여기에서 베르사유 체제가 처음부터 한계에 부딪힌 것이었고, 그 한계는 1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다.

90년대 전쟁을 통해 해체된 유고슬라비아는 이러한 실제적 어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 경우였다. 유고슬라비아 최대 민족인 세르비아인의 4분의 1은 소위 말하는 ‘세르비아 밖의 세르비아인’. 이들이 세르비아 민족자결주의를 행사하며 본토 세르비아와의 통일을 주장하고 나서자, 3개 공화국 1개 자치주에서 전쟁의 피바람이 불어 닥쳤다. 세르비아 민족자결주의 성취를 위해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무슬림의 영토 주권이 훼손돼도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자결주의를 외치던 ‘세르비아 밖의 세르비아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민족 청소의 역풍을 맞아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곳에서 쫓겨나 본토 세르비아에서 피난민으로 온갖 홀대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민족자결이 아니라 민족자멸의 길이었던 셈이다.

20세기 동유럽 민족분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민족자결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호 공생이, 특히나 동유럽 맥락에서는 유일한 출구임을 인정하는 것 외에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베르사유 체제가 낳은 민족자결에 대한 집단 환상을 역사 속으로 돌려보내 더 이상 유령처럼 동유럽을 배회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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