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성] 세월호와 커넥션공화국 기사의 사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외국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위로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던졌다. “Your country is the Republic of Manual!” 실행되지 않는 매뉴얼만 판치는 나라라는 뜻일 게다. 대한민국은 조롱당했다.

세월호 참극은 물살이 강한 지역에서의 선박 좌초라는 자연재해인 줄 알았다가 사악한 개인과 집단에서 비롯된 인재로 드러나고 그 배후에 행정권력과 정치권력이 연루된 거대한 사회적 재앙이 터를 잡고 있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특정한 사회현상이나 사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흔히 폭력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악한 개인이나 집단, 강압적인 공권력과 교묘한 방식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정치권력 등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바 주관적 폭력이 확인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런 폭력을 배태시켜야만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구조적 폭력의 그림자를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채로 알아차리게 된다.

세월호 참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정부와 정치권의 영혼 없는 반성과 급조된 종합 대책의 재생산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해양수산부의 대응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완벽하게 안전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하는 그들의 습관성 해법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현장의 실상을 도외시한 채 책상머리에서 1분에 수십 건 터져 나오는 이른바 근본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자마자 생명을 다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불안전과 불의가 횡행하는 현장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안전과 정의라는 허울 아래 이와 같은 재앙과 불의를 배태시키는 구조적 폭력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헤쳐 내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숭고한 이유는 정상으로 보이는 일상 속에 내재해 있는 구조적 폭력의 실상을 모든 국민에게 거듭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집 열쇠를 잃어버린 시각 장애인을 그가 열쇠를 잃어버린 어두컴컴한 구석이 아니라 밝은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도록 이끌고 가는 상황과 같이, 우리 사회 전체를 견인하려는 어설픈 대책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듭 재생산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지닌 망각의 속성을 교묘하게 활용해 열쇠가 사라진 지점이 아니라 화려하게 치장한 모델하우스로 국민들의 시선을 유도한 후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교언영색의 낡은 전략으로 일관해 오지 않았는가. 씨랜드 참사 때처럼 무수한 대책의 반복을 통해 교묘하게 인간의 망각에 기대보려는 방편으로써 말이다.

해경의 미숙한 대응과 해군과의 관할권 논란, 해운업계와 해피아를 옹호하던 해수부와 정부 여당의 행태, 구원파와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비리에 대한 단죄,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사후 대책 등을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참사의 수습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슬그머니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음울한 두 손에 다시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은 아닌지 실로 경계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리와 재앙이 짝을 지어 안전하게 판을 치는 볼썽사나운 현장을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고, 그 배후에 도사린 구조적 폭력의 커넥션을 뿌리부터 들어내는 진정한 대책이다. 대한민국의 화장기 걷어낸 민낯의 실체를 망각하고 살아온 우리 모두의 직무유기가, 우리의 아들딸과 부모형제를 깊은 바닷속에 수장시켰다는 자책과 분노가 한국 사회를 환골탈태시키는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될 부처가 ‘국민안전처’가 아닌 가칭 ‘국가안전처’라 한다. 이 대책이 또 다른 구조적 폭력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낼 수 없다. 있어야 할 규제는 풀어주고 없애야 할 규제는 존속시켜 정당한 규제조차도 무력화시켜 버리는 만능해결사들의 커넥션이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박종성(방송통신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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