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정진영] 세월호 알바생의 죽음 기사의 사진

아르바이트생은 죽어서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운데 마지막 길마저 세상의 큰 관심 없이 떠난 스무살 안팎 청년들의 소식에 가슴이 미어진다. 세월호에서 식당 배식과 매점 운영, 야간순찰 등의 ‘알바’를 하다 숨진 이모(19), 방모(20)씨가 세상과 이별하는 장면은 쓸쓸했다. 이들의 영정은 수많은 조문객이 몰린 정부 합동분향소가 아닌 민간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가족과 지인 등이 모인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장례비도 지원받지 못했다. 정규직 선원이 아닌 ‘알바’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다고 정규직 직원도, 승객도 아니어서 공제조합 여행자보험의 보상도 없다. 죽음에도 값이 매겨져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들은 사고 초기 탑승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은 ‘투명인간’이었다가 죽음을 통해서야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3대 독자였던 이씨와 외아들이었던 방씨는 유치원과 초중고를 함께 다닌 친구였다. 세월호에서 일했던 방씨 이종사촌형의 소개로 사고 전날 배에 올랐다. 이들은 2박3일 동안 11만7000원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지원책 마련한 정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소외감까지 더해진 유족들의 심정은 찢어졌다. 방씨의 부친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희생된 학생들과 한두 살 차이인데 우리만 겉도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알바’들의 홀대받은 죽음에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과 정부는 뒤늦게 조처를 취했다. 이들을 선원법에 따른 선원으로 인정해 유족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안산 단원고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워낙 큰 탓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지만 이제는 세월호의 ‘소외된 희생자’ ‘차별받는 죽음’에 대해서도 주목해야겠다. 일반인 승객들의 경우를 보자. 2일 오전 현재 세월호 전체 추정 희생자(사망 및 실종) 302명 중 일반 승객은 사망 27명, 실종 5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와 언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조용히 장례가 치러졌다. 정부 합동분향소는 언감생심이었고, 민간병원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가운데 세상과 헤어졌다. 세월호에 탔다 희생된 인테리어 업체 직원 이모씨의 동생은 기자들에게 “우리만 이런 상황이 온 것 같고, 도태된 것 같고 그냥 그런 마음이 장례를 치르면서 항상 있었다”고 섭섭함을 털어놨다. 또 다른 일반인 승객 유족은 “유족들에게는 통보도 않고 행정적인 걸로 해서 정부 분향소를 차린다든지 하는 거는 너무 아쉬운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러운 죽음 더 이상 없어야

지난달 25일 세월호 서빙 알바의 부모는 구조 상황을 설명하고 떠나는 구조대원을 뒤따라가 급하게 쪽지를 전했다. “훌륭한 잠수부님! 승무원복을 입은 우리 아들! 나이도 어린 우리 아들 학생들과 함께 구분하지 말고 어린 생명같이 구해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학생들 인도하다 못 나왔을 겁니다. 승무원복 입은 아이 있으면 같이 구조해 주세요.” 부모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죄인처럼 지냈다. ‘알바’였지만 ‘승무원’이란 죄책감에 드러내놓고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쪽지를 본 구조대원들은 모두 울었고 보도를 접한 국민들도 울었다.

단원고 학생들의 엄청난 희생의 뒤편에 가려진 소리 없는 죽음들을 기억해야겠다. 죽어서도 서러운 죽음을 더 이상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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