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길 다시 가보니-임항] 오대산 옛길에 마음의 평화가 기사의 사진

우리는 왜 숲길을 걸을까. 건강 유지와 체력단련, 마음의 평정 찾기 혹은 요즘 유행하는 힐링, 자연과의 교감, 또는 철따라 바뀌는 풍광의 감상, 역사와 국토지리 등 인문적 소양의 함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 하산 후 뒤풀이의 즐거움…. ‘그 숲길 다시 가보니’ 연재는 그중에서도 자연과의 교감에 초점을 맞췄다. 그 교감을 확대하려면 풀과 나무, 그리고 숲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더 많이 알수록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된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사람 사이, 즉 사회에도 신뢰가 쌓인다.

장미과 키 큰 나무들의 꽃을 다시 보고 싶어 지난달 29일 꽃이 가장 늦게 피는 오대산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가 해발고도를 높여 평창 구간에 접어들자 도로변에 아직 산벚꽃이 피어 있다. 북한산에서는 지난주 중 벌써 지고 없는 꽃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월정사 쪽으로 막 향하는데 하늘에 큰 무지개가 걸렸다. 아치 모양이 온전히 살아 있는 선명한 무지개는 세월호 참사로 시름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서광으로 느껴졌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도열한 ‘천년의 숲길’부터 걸었다. 전나무는 속성수라서 다른 나무에 비해 빨리 자라고 키도 크다. 이곳의 전나무 1100여 그루는 평균 높이가 24m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할아버지’ 전나무의 생전 나이는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2006년 벼락을 맞고 죽은 뒤 누워 있다. 초록 이끼들이 나무를 뒤덮고, 버섯이 피고, 벌레와 곤충들이 집을 짓는다. 나무는 점점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더 많은 풀과 나무가 다시 숲을 빼곡히 채운다. 4월에 피는 전나무의 꽃은 소나무과 나무들 가운데 가장 예쁘다. 그러나 주로 높은 곳에 피기 때문에 쉽게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전나무는 적응력이 강한 소나무와 달리 도시에 가까운 산에서 버티지 못하고, 깊은 산 속에서 살아간다. 현실적이진 못하지만, 지조가 강한 선비를 연상시킨다.

약 900m에 이르는 천년의 숲길과 월정사를 지나 다시 1㎞를 지나면 선재길 초입에 다다른다. 돌배나무, 귀룽나무, 처진개벚나무, 명자나무 등의 꽃이 보인다. 장미과 나무들의 꽃은 보통 잎보다 먼저 피고 꽃잎이 5장이다. 갈래꽃받침이어서 꽃잎이 낙화할 때 한 장씩 흩어져서 떨어진다. 그래서 꽃이 질 때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어쩐지 좀 슬픈 구석이 있다. ‘아 행복의 끄트머리가 흐지부지된들 어떠리/ 어느 봄날 저녁/ 뭇벚꽃으로 환하게 흩날린들/….’(황동규, ‘꽃이 질 때’ 중에서)

선재길은 입구에서 상원사까지 오대천을 좌우로 가로지르며 8㎞가량 이어진 옛길이다. 선재는 ‘선재동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초입부터 막 피어난 귀룽나무 꽃들이 반갑다. 장미과 벚나무속이며, 흰 꽃이 지름 1.5㎝ 정도로 매우 작은 편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룡목(九龍木), 귀롱나무, 구름나무 등이 있다. 연초록 잎이 먼저 나고 약 3주 후 하얀 꽃이 무더기로 모여 피는 것이 구름을 닮았다고 해서 북한에서는 구름나무라고 부른다. 멀리서 보면 흰 꽃이 자두나무 꽃처럼 연두색으로 보인다.

귀룽나무 꽃과 함께 자주 눈에 띈 장미과 나무의 꽃이 산돌배 꽃이다. 열매인 산돌배는 지름이 3∼4㎝로 개량된 배보다 훨씬 더 작고 맛도 없지만 기침, 담, 변비에 좋은 효과를 내는 약이다. 최근 돌배의 효능과 독특한 향이 알려지면서 술이나 즙의 가공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진달래와 고로쇠나무의 연한 황록색 꽃도 피었다. 철쭉은 필 때가 아직 아니지만, 성질이 급한 한 개체가 4∼5송이의 분홍 꽃을 피웠다. 고도차에 의한 시간차 꽃구경을 한 차례 더 하는 호사를 누린다.

비가 며칠 내리는 바람에 일부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서 갔던 길을 도로 나와 승용차로 다음 구간까지 이동하기를 두 차례 거듭했다. 나뭇가지들을 엮어 임시로 만든 섶다리도 건넜다.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도록 만든 다리다. 그러나 오대산장부터 상원사까지 가는 3.6㎞ 구간에는 출렁다리 등이 새로 연결돼 있어서 기분 좋게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거제수, 까치박달, 박달나무, 서어나무 등 자작나무과 활엽수들이 우점하고 있는 극상림(極相林)이다. 극상림이란 오래 되어 생태계가 매우 안정된 숲이다. 피나무,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난티나무, 쪽동백나무, 가래나무, 노린재나무, 음나무, 다릅나무, 야광나무 등도 고루 분포했다. 피나물, 동의나물, 긴개별꽃, 양지꽃 등 야생화도 보였다.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부엽토, 그 위에 낙엽송이 깔린 길은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해준다.

어설픈 요령으로 대략 장미과, 콩과, 참나무과, 소나무과, 자작나무과 등 5가지 과의 나무들을 익히면 급한 대로 우리나라 산의 나무는 대부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걸로 아쉬우면 개체수가 많은 물푸레나무과, 종이 많은 인동과 등 2가지 과를 더 공부한다. 분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문법을 알아야 외국어를 쉽게 배우듯 분류 기준을 알면 더 많은 식물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대산 선재길 걷기는 꽃구경의 즐거움보다는 힐링, 즉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오래된 숲이 주는 치유의 힘일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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