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계동] 북한 붕괴론과 생존론 기사의 사진

분단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을 막아내기 위한 소극적 대북정책을 펼쳐왔는데, 1990년을 전후해 오히려 북한의 붕괴를 논하면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이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당시 북한 붕괴론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1989년의 세계 냉전 종식이다. 몰타의 미·소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이 선언되었는데, 실제로는 40년간의 냉전대립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한 것이었다.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들이 모두 붕괴했고 소비에트 연방도 해체되면서 그 여파가 북한에도 미칠 것이라고 예견됐다. 둘째, 1980년대 후반 북한이 일으킨 국제 테러, 특히 1987년의 김현희 KAL기 테러에 의해 전 세계의 비난과 더불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함으로써 외교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점이다.

셋째, 한국이 추진한 북방외교의 결실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은 물론 북한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 중국의 한국과의 수교다. 당시 북한은 소련과 중국을 ‘배신자’라는 표현을 하며 비난할 정도로 고립과 소외를 경험했다. 넷째, 1990년 10월 1일 독일의 통일이다. 동독이 붕괴되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북한도 붕괴되어 남한에 흡수통일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다섯째 요인은 북한의 내부적인 경제난의 시작이다. 1990년부터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고, 식량난, 외화난, 에너지난이 파생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면서 북한 붕괴론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러한 붕괴론의 대세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반론을 제기하면서 북한의 생존론을 내놓았다. 우선 북한의 경제난에 대하여,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체제가 붕괴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부유한 서방세계의 잣대로 보면 북한이 저렇게 가난한 상태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지만 북한 주민들은 빈곤이 체질화돼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가난을 덜 느낄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예를 들어 하루 세 끼 먹는 사람은 두 끼 먹는 사람이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만 두 끼만 먹던 사람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논리다. 또한 북한에는 빈부차이가 별로 없는 총체적인 빈곤 상태이기 때문에 가난 때문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낀다고 한다.

대체로 경제난이 체제 붕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그 불만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조직화돼야 하는데, 북한에는 불만이 별로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불만이 생기더라도 이를 조직적인 저항으로 이끌 수 있는 시민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붕괴가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나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북한보다 더 가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가난이 오히려 체제를 더 결속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게 생존론자들의 논리였다. 이와 더불어 북한 체제의 유지와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되면 북한을 지원할 것이라는 주장도 북한 생존론에 한몫을 했다.

북한 붕괴설이 처음 나온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은 붕괴되지 않고 있다. 독재 지배자 두 명이 사망했는데도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일부 정권은 북한의 붕괴를 예상한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펼쳤으며, 현 정부의 통일정책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와 체제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붕괴되기를 원한다면 우선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적극 추진해 북한 주민들의 의식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와 중국의 민주화운동인 천안문 사태 등이 개혁적인 시민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김계동 교수(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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