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촛불 모아 밝힌 등대 기사의 사진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면 일이 제대로 될까 모르겠다. 소와 수레를 이어주는 멍에 고리가 빠지고 없다면 큰 수레나 작은 수레나 어떻게 끌 수 있을까? 이는 신뢰가 지닌 힘을 수레에 비유하여 공자가 한 말이다. 소는 위정자이고 수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소라 할지라도, 크고 좋은 수레라 할지라도 둘을 이어줄 멍에의 고리가 없다면 한 발자국도 끌지 못한다. 공자의 이 말이 오늘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정부의 어떠한 약속도 해결책도 믿지 않는, 관계 당국에서 발표하는 어떠한 정보도 믿지 않는 극도의 불신.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이다. 유례없는 참사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 깊은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지금 정부와 관계 당국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적나라하게 망라된 사건사고의 종합세트이다. 승객들에게 ‘기다리라’는 방송을 한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살아나왔다. 한 달이 지나도록 침몰 원인과 경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주요 지점의 교신 기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침몰 보고는 국정원으로 되었고, 해경은 구조보다 특정 업체와의 인양 협약과 공적 가로채기에 바빴다. 선박업체는 만연한 탈법과 부실 경영의 표본이었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느 것 하나 시원하지 않다.

소요의 와중에 한 장관은 응급진료 테이블을 치우고 라면을 먹고, 다른 장관은 자신의 현장 방문 사진을 찍기 위해 구조와 수색을 지연시켰다. 우스꽝스러운 희비극이 촌각을 다투어 벌어진 한 달, 유가족들은 체육관에 난민처럼 내팽개쳐졌다.

그뿐인가. 유가족들에게 시체장사라는 원색적인 모욕이 날아들었다. 300명 목숨 따위는 1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수라고 비아냥대었고, 벼슬한 양 유세 떤다고 조롱하였다. 믿어지는가. 오늘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세월호가 바다 아래로 침몰한 이후 우습게도 대한민국의 가장 부끄럽고 추한 얼굴이 일제히 세상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금 온 나라에 팽배한 불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련의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증폭된 것이다. 이제 국가의 어떠한 말도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앞서 일어난 지하철 사고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은 신뢰의 붕괴 징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의 틈을 타고 음모론의 유언비어는 한껏 몸을 부풀리고 있다. 물질적 풍요, 강력한 국방력, 그리고 신뢰 가운데 공자가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은 이유를 요즘에 와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배를 침몰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국가적 위난에서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며, 위기 상황에 얼마나 신속하고 합당하게 대처하느냐가 역량을 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전근대시대의 왕이 천재지변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제단을 차리고 정치를 반성하는 것이 관례였다면, 지금 시대의 대통령은 인재(人災)로 인한 후진적 대형 참사 앞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배의 침몰만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다. 관행화된 탈법과 만성적 안전불감증, 일상화된 비리와 비정상적인 정경유착, 권력자 중심의 의전 행정, 비합리적인 보고체계와 비효율적인 대응 시스템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고질화된 문제적 지점들이 총체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다. 눈물 어린 눈으로 어린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손으로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다시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어올린 촛불은 항거의 횃불이 아니다. 중심을 잃고 변침한 세월호마냥 믿기지 않는 방향으로 표류하는 정부를 향해, 부디 바른 길 가라 들어올린 기원의 등불이다.

저들이 들어 올린 기원의 등불을 칠흑 밤바다의 등대로 삼고, 저들이 켜준 등불로 밤길을 밝히려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위선의 포옹 대신 진심으로 슬픔을 다독이는 일이다. 유착을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권위와 독선을 내려놓고 조작과 통제의 술수를 걷는 일이다. 징계와 탄압의 철권 대신 촛불을 들어올린 손을 마주 잡는 일이다.

켜기 어려운 불이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꺼지기도 잘하는 불이다. 그렇기에 그 불들을 모아 밝힌 등대를 의심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주길 바란다. 믿음은 그때 비로소 다시 사람들 사이를 메울 것이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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