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 남북관계 복원의 분기점 기사의 사진

우리말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란 말이 있다.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말하자, 북한 국가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는 중대보도를 통해서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 바로 남조선 땅에서 기생하고 있는 박근혜 역적패당들”이라고 맞받았다. 이 정도면 무력을 동원하지 않았을 뿐 말로는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없어져야 할 나라와 정권으로 비방하는 것은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에 기초한 것이다. 냉전시대 남과 북은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을 꿈꾸며 상대방을 자기 체제로 흡수 또는 적화하기 위해서 제로섬 게임을 했다. 탈냉전과 함께 남과 북도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고 화해협력, 공존공영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서면서 6·15와 10·4선언 이행이 중단되고 남북관계는 다시 제로섬 게임으로 되돌아갔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뇌졸중 이후 북한 급변사태론이 다시 부각되면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노력과 남북관계 복원 움직임은 중단되고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갈등의 연속이다.

남북관계 복원이 어려웠던 우리 측 요인은 핵을 가진 북한과 화해협력을 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제재와 압력을 지속하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낙관론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근저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과 제재와 압력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는 신뢰 프로세스를 내놓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이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을 공약했다. 하지만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표방하면서 신뢰프로세스를 작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박근혜정부 집권 2년차를 맞는 연초부터 남과 북은 통일대박론과 중대제안을 내놓고 관계설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남과 북은 고위급접촉을 갖고 상호 비방중상 중단에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남과 북은 합의이행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북한은 남측의 언론들이 그들 지도자·체제 등과 관련한 무차별적인 비방중상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표시했고, 우리 정부는 자유언론의 특성상 이를 말릴 수 없다고 하면서 방관했다. 그러자 북측도 주민들과 관리들을 동원해서 남측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정부 대응을 문제 삼는 비난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남과 북 모두 올해가 남북관계 복원의 분기점으로 생각하고 연초부터 관계복원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이 나온 이후 신뢰프로세스에 관한 담론이 사라지고 북한의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방중상 중단합의 이후 오히려 상호 비방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신뢰부족에서 오는 불신이 남북관계 복원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박근혜정부를 ‘패당’ ‘역적’이라고 부르고, 남측이 북한을 ‘사라져야 할 나라’라고 한다면 남북관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6일자 조선신보는 “북측의 박근혜정권에 대한 최종평가가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 이후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정부가 제재와 압력을 지속하면서 북핵 고도화를 방치할 것인지, 남북관계 복원과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북핵 고도화를 막을 것인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관계복원을 원한다면 상대를 자극하는 외교관례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말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1∼3월 위기설과 4월 큰 한 방 설에 이어, 없어져야 할 북한 등을 연이어 언급하는 국방부의 말은 관계복원과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튼튼한 안보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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