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장지영] 용병과 외국인 선수 기사의 사진

‘용병’은 원래 돈을 주고 고용한 직업군인을 가리키는 말로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2차대전 후 아프리카 등에서 내전과 정부 전복에 외국인 용병이 활용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유엔은 1968년 내전에 용병을 고용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데 이어 70년 국가에 의한 용병의 조직과 파견을 금지하는 내용을 국제연합헌장에 명시했다. 그리고 89년엔 용병의 모집, 사용, 자금 제공 및 훈련을 금지하는 국제조약도 제정됐다.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용병이 국내에선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바로 프로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지칭할 때다. 일반 스포츠팬은 물론 언론에서도 ‘용병 농사’ ‘몸값 하는 용병’ 등으로 심심찮게 쓰인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무대에 외국인 선수가 뛰기 시작한 것은 1983년 프로축구 출범 때부터다. 그리고 97년 프로농구, 98년 프로야구 그리고 2005년 프로배구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종목에 따라 외국인 선수 제도가 다르게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농구와 배구는 비중이 매우 높아서 외국인 선수의 활약에 따라 시즌 성적이 좌우되기도 한다.

스포츠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된다는 점에서 돈을 받고 다른 나라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고 부르는 게 의미 면에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싸우기 때문에 충성심이 없다는 전제가 깔린 데다 내·외국인을 차별적으로 분리한다는 뜻을 내포한 만큼 적절치 않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대가인 연봉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선수들에 비해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것도 옳지 않다. 일부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성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올 시즌 프로야구를 보더라도 넥센의 비니 로티노가 포수, 내야수, 외야수 등 가리지 않고 감독이 원하는 대로 출전하고 한화의 펠릭스 피에가 경기 도중 흔들리던 선발투수 케일럽 클레이를 진정시키겠다고 외야에서 마운드로 달려오던 모습 등은 이를 증명한다.

용병이라는 용어가 부당한 것은 해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을 떠올리면 바로 납득할 수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류현진(LA 다저스)이 미국에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용병으로 대접받길 바라는 한국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손흥민(레버쿠젠)과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기성용(선덜랜드)이 아시아 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이제 많이 개방되고 국제화되면서 여러 부문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활약하게 됐다. 따라서 한국 프로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를 부정적인 어감의 ‘용병’으로 칭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사실 용병이란 호칭의 문제점은 이미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지적되었던 것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라는 용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 차별성이 없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라곤 하지만 굳이 ‘외국인’이라고 언급하는 게 필요한지 의문이다. 추신수에 대해 미국 언론이 ‘외국인 선수’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앞으로는 그들을 이름으로만 부르면 어떨까.

장지영 체육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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