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심리분석연구원 이나미 원장이 말하는 ‘세월호 치유’ 기사의 사진

“지금 희생자 유족에 심리치료 강요하면 모욕 될 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온 국민에게 엄청난 슬픔과 자괴감, 분노를 안긴 대형 참사의 늪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 여러 가지 수습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적 울분이 완전히 가라앉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고로 희생자 가족과 구출 생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교사와 학생, 안산 시민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이 입은 심리적 상처는 매우 크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직접적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심리치료를 실시하고 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일반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줄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심리치료 전문가인 이나미(53) 박사를 만나 세월호 참사의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인터뷰는 16일 오후 국민일보사 회의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고 경과를 지켜보면서 정신건강 및 심리치료 전문가 본인의 심리 상태는 어땠는가.

“저도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다. 웬만하면 다 구출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행정조직 구조 같은 것이 굉장히 잘 돼있고 직업윤리가 철저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 적극적으로 구출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해경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우리가 뭣에 홀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뭔가에 속고 살았구나, 우리는 지금까지 과연 무얼 했나 하는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희생된 아이, 물속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 약 2주 동안 수면제를 먹어야 했다. 아이들의 구조를 기다리며 바닷가에서 발을 동동 구를 부모들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종류의 사고가 난 것이 처음도 아닌데 온 국민이 이렇게 심하게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사고와 재난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00% 안전보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것은 짧은 시간에 수습이 됐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의 경우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을 온 국민이 TV 화면으로 지켜봐야 했으니 그 고통이 특별하다고 봐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텐데 누가 보더라도 구할 수 있었는데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고, 해경 대원들이 의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어쩌면 고의로 아이들을 죽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굉장히 심하다고 본다. 2명의 부모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는 잘 되고 있다고 보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심리치료가 아니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을 충실히 들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실종자의 조속한 수습, 명확한 사고 원인규명, 엄중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고 있다고 본다. 생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보상도 중요하다. 이 상황에서 장례식장에 찾아가 자식 잃은 부모에게 ‘당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이니 나한테 심리치료 받으시오’하는 것은 모욕이다. 치료받기를 강요해선 안 된다. 지금 제일 급한 것은 심리치료가 아니라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다. 심리치료는 고위험군의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전반적으로는 5년이고 10년이고 도와줄 계획을 세워 시간을 갖고 해도 된다.”

-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고, 어른들은 아이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는 더 많이 미안해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란 생각을 가져도 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도덕성이나 직업윤리가 훼손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다 세대갈등이 심화돼 있는 상황에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를 불신할 수도 있다.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철이 없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

-국민들 사이에 자학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슬픔과 분노의 에너지를 희망으로 바꿀 방법은 없나.

“자학(自虐)이나 자조(自嘲)는 자성(自省)과 구분돼야 한다. 자학이나 자조는 무책임함과 비관주의를 깔고 있다. 나는 너희들보다 나은데 우리 국민이 이 수준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난 거야 하는 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자성이다. 나부터 뭘 잘못했나를 생각하고, 내가 혹시 법규를 지키지 않은 것은 없나 하고 되돌아보는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 큰 사고나 사건이 날 때마다 이민 가겠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생각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모순 없는 나라는 없다. 미국에도 왕따와 자살 많다. 이 시점에서 내가 뭘 잘할까,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훌륭한데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이 이 꼴이니 떠나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승객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도망친 선장 및 선원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정부, 장관 등 국가 지도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 대통령에 대한 삿대질, 국무총리에 대한 물병 투척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신발에 맞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중적인 면이 있다. 유교적 상하질서 문화와 젊은 대중의 서양식 행동양식이 혼재해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욕 먹는 건 당연하다. 권위는 점잔빼고 호통 친다고 세워지지 않는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 몸을 낮추고, 약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호불호가 너무 큰 것 같다. 따르는 사람들이 모시는 사람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박 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촛불집회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집회 참가자들의 울분이 언제쯤 가라앉을 것 같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정부가 책임감 있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빨리 내놓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9·11사태 때의 미국과 달리 한국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당당하게 말하는 리더가 없다는 말을 했다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아니라 ‘비록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취지로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안다. 지금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은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냥 가자’는 소리다. 전혀 다른 얘기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이런 불행한 일을 다시 당하지 않을지 꼼꼼히 챙겨볼 때다. 자기 아이가 죽었는데 ‘빨리 툴툴 털고 일어나 일이나 해’ 이렇게 말해서야 되겠나.”

-세월호 사고로 경제 활성화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말이 많다.

“경제, 경제 하는데 ‘추모의 경제’ ‘위로산업’을 생각해 봄직하다. 영국에서 다이애나비가 죽었을 때 그 캐릭터 하나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나.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캠프 같은 걸 만들어 문화사업을 얼마나 많이 하나. 우리도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추모음악회, 추모미술전, 추모오페라 등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야지 경제위축 타령만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가 대기업들에 전국 주요 시설물에 대해 안전점검을 함께 해보자고 제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가진 자들은 돈 한푼 안 풀면서 국민들에게 돈주머니 안 연다고 닦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와는 직접 상관 없는 질문이다. 최근 성경치유 에세이집 ‘슬픔이 멈추는 시간’을 출간했는데 심리치료에 성경이 어떤 의미가 있나.

“모든 종교는 치유와 관련이 있다. 인간의 고통과 상실, 절망을 인간 스스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증상을 치유할 수는 있어도 영혼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성경에 수많은 사건과 상황,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 상황과 등장인물에 나의 슬픔을 대입해 객관화시키면 굉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엄청난 힐링을 받을 수 있다.”

-노인 자살과 청소년 자살이 심각하다. 어떻게 하면 자살률 세계 1위를 면할 수 있겠는가.

“과거 서양의 많은 학자들은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윤리를 공존케 하는 요인으로 가족애와 효를 꼽았다. 그러나 가족애와 효가 빠른 속도로 해체됐다. 당연히 직격탄을 맞은 건 노인이다. 자식들에 대한 실망이 크다. 특히 40세 전후 어른은 이기적인 X세대다. 이들에게서 노인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국가가 상당 부분 보호 임무를 떠안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친지와 어울리는 기회가 적어 사회성 훈련이 안 되는 게 큰 문제다. 스포츠로 팀워크 훈련을 시키고 공동육아, 대안학교 등을 통해 그런 걸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경우 일정 기간 군복무를 시키는 것을 검토해 봐야 한다. 또 성인 여성은 전원 민방위에 편입시켜 정신 재교육, 공동체 생활교육, 안전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함께 어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회가 돼야 자살률이 줄어든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만 주문한다면.

“누구나 가정에서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심리의학자 빅터 프랑클은 ‘사람이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살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책임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필요를 느낄 때 힘을 받는다. 지금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 산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족 구성원끼리도 이런 마음을 가질 때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나미 원장은 누구

서울대에서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 뉴욕 융 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 디플롬을 취득했다. 10대부터 90대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심리상담을 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고유한 심리에 관심을 두고 설화와 민담, 문학작품 등을 연구해 왔다.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 ‘한국사회와 그 적들’ ‘오십후애사전’ ‘괜찮아 열일곱살’ 등 총 12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검사 출신 변호사 이재순(56)씨와 사이에 2남.

△인천(53) △서울여고, 서울대 의대 △뉴욕 신학대학원 목회신학 강의교수 △서울대 외래겸임교수, 한국 융 연구소 교수,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현)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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