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검사→국민검사→재상으로… 안대희 前대법관, 새 총리에 내정 기사의 사진

‘전두환 군사독재’가 시작되던 1980년. 갓 스물다섯 살 청년은 군 법무관을 마친 뒤 판검사 중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심하다 과감히 검사의 길을 선택했다. “거악을 척결하려면 직접 수사하고 파헤쳐야 한다”는 소신에서였다. 스무 살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이 청년의 별명은 ‘소년검사’였다. 역대 최연소 검사였다. 일찍 사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최종 학력은 서울대 행정학과 3학년 중퇴.

몇 년 뒤 이 검사는 이른바 ‘저질 연탄’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특수부 막내로 시작한 수사에서 그는 “이런 연탄으로 서민들이 어떻게 추위를 막고 밥을 해 먹겠느냐”며 물불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연탄업계가 다 망한다. 경제를 아주 반 토막 내려고 한다”며 군사정권이 수사 중단 압력을 가했다. 수사라인은 대부분 좌천성 인사를 당했고, 한 달 뒤 검찰총장은 아예 옷을 벗었다. 그래도 소년검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가 안대희다.

안 검사는 나중에 서울지검 특수 1·2·3부 부장검사를 모두 거치고 대검 중수부장을 지내며 ‘대한민국 특수통 1호 검사’란 소리를 듣게 됐다. 한번 비리 단서를 잡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스타일이라 ‘고구마 덩굴 캐기 권법의 달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1997년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학원·고액 과외 비리를 수사하면서 학원장과 과외교사들을 구속한 뒤 교육청 공무원, EBS 간부, 교재 출판사 등으로 수사를 이어간 적이 있다. 급기야 고교 교사들에게까지 수사가 미치자 검찰 수뇌부가 “그만하면 됐다”고 말렸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수사 스타일이 가장 빛을 발한 건 노무현정부 초기의 대선자금 수사 때다.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그는 ‘협조 기업은 선처, 비협조기업은 엄단’ 방침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기업들의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그는 정치권의 수사 흔들기 시도가 있을 때마다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 “수사에 흠집내기식의 말을 하는 것은 간섭의 의미가 있다” 등으로 맞받아치며 버텨냈다. 그는 ‘국민검사’가 됐고, 검사로는 처음으로 팬클럽이 생겼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검사는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각오로 임해야 수사가 성공하지, 사심을 앞세우면 수사 결과가 절대 좋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검찰 안팎에서 ‘독한 사람’이란 평을 들었지만 “나는 독한 사람이 아니라 맑은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2004년 5월 21일 대선자금 수사 종결을 선언하며 “완벽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면 달게 받겠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하나도 없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대선자금 수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산행을 갔다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당시 유행하던 랩을 부르며 엉덩이춤을 추는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원칙을 지켜라.’ 중수부장을 끝으로 검사를 그만둔 그는 검찰 몫으로 대법관이 됐고, 2012년 이마저도 퇴임하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 삶의 지표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2014년 5월 22일 소년검사는 34년 만에 사실상 ‘재상(宰相)’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박근혜정부 2기 내각 총리로 내정된 것이다. 안 내정자는 몇 번이나 고사했다고 한다. 청와대로부터 여러 번 연락을 받았지만 “못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인의 만류가 컸다. 수십 년째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그에게 부인은 “당신 혼자 명예 찾겠다고 또 공직에 가느냐”고 말렸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아파트에서 딸은 한때 “아버지도 법조인인데, 이제는 성공한 변호사로 잘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지며 울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안 내정자는 청와대의 발표가 나온 직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 삶을 모두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미 자신의 행복과 가족들의 바람을 저 멀리 물리친 뒤였다. 목소리에는 강한 결심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안 내정자라면 공직사회의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과 공무원 철밥통 깨기를 맡겨도 충분히 완수할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임명되면서였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안 내정자는 오히려 대선캠프와 거리를 취했다고 한다. 차기 정부의 주요 보직 물망에 수시로 올랐지만, 정작 본인은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가길 바란다”는 말만 남긴 채 세인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다. 이때도 박 대통령은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이 여의도정치의 역학구도나 정치공학에 따라 처신하는 것을 싫어했던 만큼 안 내정자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안 내정자 지명과 함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사표도 전격 수리했다.

신창호 지호일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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