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2. 회장님은 소영이를 좋아해? 기사의 사진
그래픽=전진이 기자 ahbez@kmib.co.kr
바둑에서 자충수와 묘수는 한끝 차이다. 자신이 던진 돌이 스스로를 게임에서 무너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고, 대마를 잡는 묘수가 될 수도 있다.

국내 굴지의 S그룹 신입사원 장그래(가명·드라마 ‘미생’ 주인공). 때론 엉뚱하면서도 궁금한 건 못 참는다. 회사의 비전과 복지제도 등에 대한 신입사원들과 회장님과의 대화가 한참 진행되던 중 돌직구를 던졌다.

“항간에 떠도는 회장님과 여배우와의 소문은 사실인가요?”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던 질문이지만 감히 누구도 꺼낼 수 없었던 질문이다. 순간 장내가 시베리아 벌판처럼 얼어붙었고 적막을 깬 것은 회장님의 너털웃음이었다.

자충수를 뒀다고 생각한 장그래. 괘씸죄에 걸려 잘렸겠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직원은 S그룹에 잘 다니고 있다. 우문(愚問) 때문에 해고당했다고 소문 날까봐 오히려 불이익 당하지 않고 잘 나가고 있다.

10여년 전 S그룹 회장이 선대 회장 뒤를 이어 경영권을 물려받았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한 당돌한 기자가 있었다.

언론 신고식으로 기자간담회를 하던 날 테이블 한쪽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매일 새벽 2, 3시에 귀가하시는데 사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러신가요? 시중에는 다른 ‘소영이’를 좋아하신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때도 40대 초반의 회장은 “처음 중책을 맡다보니 일이 바빠서 그렇다. 결코 집사람이랑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며 너털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그 회장은 실제 공식 석상에서 소문의 주인공인 여배우와 마주쳐도 쿨하단다. “우리 애는 잘 크고 있느냐”는 농담을 건넬 정도다.

당사자인 회장의 부인은 어떨까?

미술관장으로 일하는 회장 부인과 재작년 초여름 여기자협회 임원들이 점심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 아침 스포츠신문도 아닌 한 일간 신문에 회장 부부가 몇 달째 별거 중이며 곧 이혼소송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대화를 빙빙 돌려가던 중 한 여기자가 “궁금한 것은 못 참겠다”며 질문을 날렸다.

그녀 역시 쿨했다.

“신혼 때부터 따라다닌 얘기들이라 이젠 그런 기사 나와도 신경 안 써요.”

이 관장은 ‘S그룹 회장 사모님’이나 ‘대통령의 딸’이란 꼬리표가 붙지 않았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을 여걸 중의 여걸이다.

가냘픈 체구와는 달리 배짱과 꿈이 보통이 아니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스스럼 없이 다가서는 털털한 매력까지 갖췄다.

“여자로 태어난 게 싫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머리를 길게 땋아주시곤 했는데 그게 싫어 고집을 많이 부렸지요.”

군인의 딸답게 어렸을 때부터 소꿉장난이나 고무줄 놀이보다 새총을 갖고 전쟁놀이를 하며 자랐다.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재벌가와 정치 권력가 집안의 정략결혼일 것이란 선입견도 오해다.

미국 시카고대학 재학 시절 회장은 그 지역에 유학 오는 학생들을 공항에서 라이드해주곤 했다. 그녀도 시카고대학에 처음 왔을 때 이 회장이 라이드를 해줬고, 회장의 친구와 친분이 있다보니 자주 어울렸단다.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던 대학시절 자상한 모습에 반했다고. 이들은 전직 대통령이 집권 1년차이던 1988년 결혼했다.

심심찮게 별거설이 돌았던 이 회장 부부는 요즘 진짜로 ‘별거 중’이다. 지난해 1월 말 회장이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년10개월로 대기업 회장으로선 최장 수감기간을 기록 중이다.

병원 VIP실과 휠체어에 의지해 병원과 법정을 오가다 풀려나는 다른 그룹 회장들과 달리 꼼수 부리지 않겠다는 오기와 튼튼한 신체(?)를 탓할 수밖에.

계열사 돈을 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해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은 그가 최근 옥중에서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란 책을 펴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점차 늘어가는 사회문제를 풀어갈 해결사로 사회적 기업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사회적 기업을 늘리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자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하는 기업에 상을 주자는 것이다.

점쟁이 꾀임에 넘어가 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했다는 그가 책 서문에 “누구보다 내게 이 책의 집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쓴 것은 아이러니다.

이유를 듣고 보니 그는 감옥에 수감된 뒤 목사님으로부터 성경책을 건네받고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장인인 전직 대통령이 병상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과 우연이라고 할까.

사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딸, 아들까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것은 회장 부인이다.

두 달 전에는 이들의 둘째 딸이 해군사관학교에 입소해 화제가 됐다.

최근 삼성과 현대차 3세의 이혼 얘기가 자주 회자된다. 요즘은 대한민국 부부 3쌍 중 1쌍 이상이 이혼할 정도로 이혼은 뉴스도 아닌 세상이 돼 버렸다. 하지만 재벌가 이혼이 관심을 끄는 것은 재산 상속 문제 등이 얽혀있기 때문일 터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이혼한 재벌가의 장인이 운영하던 부품회사가 수주가 딱 끊기면서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게 생겼다는 소문이 돌까.

‘왜 나는 여자친구가 없을까’를 출간한 영국 워릭대학의 수학강사 피터 배커스는 외계생명연구에 쓰이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해 완벽한 짝을 만날 확률을 계산한 결과 28만5000분의 1, 즉 0.0000034%가 나왔다고 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그려온 화가 이수동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사랑하는 그녀와 마시는 커피”라고 읊었다.

이들 부부가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더 돈독해질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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