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3. 10년 위기설과 삼성·한화의 빅딜 기사의 사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국민일보DB
역시 회장님은 통이 컸다. 삼성에 1조9000억원 규모의 통큰 딜을 제안했고, 젊은 경영인 삼성가 3세는 이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합작품에 세상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대부분의 빅딜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지만 이번 건은 자발적으로 이뤄진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삼성공화국에서 관리의 삼성으로



‘사업보국(事業報國)’.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창업 1세대들의 꿈은 내 가족뿐 아니라 사업을 키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거였다.

자본금 3만원으로 시작한 삼성상회를 키우고 주변의 반대를 뚫고 전자산업과 반도체산업 등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닦은 이병철 창업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소니도, 노키아도, 애플도 따라잡으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전자업계 1위로 올려놓은 이건희 회장.

이번 딜을 보면 이들 세대를 거쳐 ‘삼성공화국’은 이제 ‘관리의 삼성’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공업이 어려워지면 전자에서 돈을 갖다 쓰고, 반도체 경기가 어려우면 건설에서 돈을 돌려쓰면서 ‘문어발 경영’ ‘선단 경영’을 해왔던 아버지 세대 경영방식과는 다른 양상이다.

삼성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데는 경영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항상 앞서간 주자가 있었고, 그 주자의 뒤를 보며 따라잡기 위해 달려왔는데 앞서가던 주자는 모두 고꾸라지고 어느새 가장 앞서 뛰고 있다.

뒤에는 중국 업체들과 넘어졌다 다시 뛰기 시작한 경쟁사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먹거리 사업으로 벌여놓았던 신수종 사업에선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적은 줄어들고 앞은 보이지 않는다. 항간에는 ‘10년 위기설’까지 나돈다.

1987년 블랙먼데이, 1997년 아시아발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쳤고 10년 주기가 다가오면서 2016, 2017년엔 중국발 위기가 시작될 것이란 게 그 요지다.

미국과 유럽이 막대한 돈을 풀어도 끝날 듯하던 위기의 종착역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이어 최근 중국마저 ‘쩐의 전쟁’에 가담했고 유럽도 다시 금리인하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강남의 큰손들은 이미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주식을 현금화하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번 빅딜을 보면서 스멀스멀 외환위기 때가 떠올랐다면 기우일까.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를 쓴 리처드 하인버그의 말대로 세계 경제는 단순한 경기후퇴가 아니라 성장의 종말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제 가능한 성장은 ‘상대적 성장’뿐이다. 세계 경제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으며 승자들이 나누어 가질 몫은 줄어만 간다.

기업들은 이미 동물적 사업감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첫 발을 떼는 ‘이재용의 삼성’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도전’보다 ‘관리’에 안주하리라 관측되는 이유다.



3남매의 경영권 승계구도는?



이번 빅딜은 경영권 정리의 의미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7개월째 병석에 있으면서 3남매로의 계열사 교통정리가 더 다급해졌다.

삼성그룹 임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외모뿐 아니라 아버지의 승부욕을 그대로 빼닮은 것은 호텔부문과 상사부문을 맡고 있는 맏딸 이부진 사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어머니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이부진 사장이 계열사 경영을 새로 맡으면 담당 임원들은 긴장한다. 보고 하나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호텔신라 경영을 맡은 뒤 “계열사 임원들의 신라호텔 이용실적이 왜 이리 저조하냐”고 묻자 이 얘기가 사장들 귀에 들어가 신라호텔이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후문도 있다.

호텔신라 상무시절인 2007년에는 아이를 출산한 지 3일 만에 사무실에 출근해 직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삼겹살에 소줏잔을 기울이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올해 초에는 호텔 회전문을 들이받은 택시기사에게 4억원 이상의 배상을 면제해줘 인간적 면모를 보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온화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10여년 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경영수업을 받는 삼성그룹 황태자에겐 높은 관심만큼이나 숱한 소문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믿거나말거나 소문은 소문일뿐. 당시 삼성 임원들은 30대의 이재용 상무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90도 가까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공손하게 인사를 잘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핏줄이지만 남매 성격이 이렇게 다르니 몇 년 전 “오빠와 경쟁하게 해달라”며 이부진 사장이 경영권 승계에 반발을 들었다는 기사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닐 거다.

삼성이 한화에 삼성종합화학을 매각함으로써 경영권 승계 퍼즐도 다시 맞춰야할 판이다.

그동안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를 승계하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와 중화학분야를, 이서현 사장은 광고패션부문을 맡아 계열분리에 나설 것으로 관측해왔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은 각각의 자녀를 데리고 야구장을 함께 찾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남매의 난’이 벌어질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의리’ 회장님의 통 큰 결단



이번 딜은 한화가 삼성에 먼저 인수 제안을 했고, 삼성이 석유화학사업도 인수 대상에 추가하면서 규모가 커진 것으로 전해진다.

막후에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하버드대 동문 인연이 작용했다고 한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한화그룹 내에서는 유화산업 인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딜이 무산되는 듯한 분위기가 확산됐지만 결국 딜을 성사시킨 것은 김 회장의 결단이었다고. 삼성이 요구한 7500여명 전 직원 고용승계도 ‘의리 있는 회장님’의 용단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거다.

1998년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20억~30억원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임직원들의 고용승계를 반드시 매각조건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나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수감됐던 로버트 김 후원과 천안함 유족을 지원한데서 보듯 김 회장에겐 영화배우 김보성 뺨칠 정도로 ‘의리’가 트레이드마크처럼 따라다닌다.

매달 30대 그룹 회장단 회의를 준비해야 하는 전경련 직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재벌 회장도 김 회장이다.

회장단 행사가 끝난 뒤 전경련 사무국 직원들에게 고생했다며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고. 봉투를 열어본 직원들은 김 회장의 통큼에 또 한번 놀랐다는 게 전경련 어느 임원의 회고담이다.

그런데 이번 딜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궁금증 하나.

왜 이 시점에 대형 빅딜이 발표됐을까.

경영권 승계를 위해 10여년 전 헐값에 사들인 삼성SDS 주식이 상장되면서 3남매가 5조원대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기사가 나오고 국회에선 이를 환수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난리를 치는 이 때에 말이다.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올해 초 풀려난 회장님은 이번 빅딜을 계기로 내년 초 경영에 복귀할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고’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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