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4. 4대 천왕 떠나니 서금회의 공습인가 기사의 사진
청와대 낙점설이 나도는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
“이광구 부행장은 이제 우리은행장 되기 어렵겠네요. 언론에서 저렇게들 난리를 치고 있으니.”

“안 그럴 것 같은데요. 그렇게까지 밀었는데 포기하겠어요?”

3일 저녁 사석에서 만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은 의외였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이날 아침 한 일간 신문에는 지난 1일 직원들에게 연임을 포기하겠다고 이메일을 돌린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순우 행장의 연임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민영화 과제를 뚝심 있게 수행해왔고 은행 실적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왜 연임을 포기했을까.

“돌아가는 걸 보면 모르나. 연임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내가 (차기 행장이) 되면 조직이 난장판이 되는 거지. (버티다간) KB 임영록 전 회장처럼 되지 않겠나. 이 부행장을 찍어서 냈는데 행장추천위원회에서 (이 부행장이 회장 후보가) 안 되면 난리가 나지 않겠느냐. 연임하려 들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조직은 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선의 의중을 알고도 버티기에 나섰다가 만신창이가 된 ‘KB금융사태’ 전철을 밟을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금융당국은 애초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 이순우 행장과 이동건 수석부행장, 정화영 중국법인장 등 3명을 청와대에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행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광구 부행장 이름은 여기에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광구 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을 추가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 5명을 대상으로 인사 검증을 했다고 한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광구 부행장의 행장 내정설이 나돌았을 정도로 행추위는 철저히 무시됐다.

민간 은행과 달리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하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은 정부 지분이 57%에 달한다.

정부가 최대 주주이다보니 인사권을 갖는 것은 맞지만 청와대가 금융당국과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를 무시하고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지나치다.


금융권에 드리우는 신관치(官治) 그림자


이광구 부행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 멤버로 정권 실세쪽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강대 출신 금융권 동문들이 만든 모임이다.

20~30명 수준이었던 서금회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300여명 규모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올 들어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정연대 코스콤 사장을 배출했고 4개월째 공석이던 대우증권 사장에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이 확정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정권 초반에 임명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서금회 멤버는 아니지만 서강대 출신인데다 대선 캠프에 몸담아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이명박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더니 정권을 잡은 뒤에는 ‘국정철학 공유’라는 새로운 조건을 붙여 이명박정부의 금융 4대 천왕으로 불리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 심기’에 열심이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어윤대 전 회장, 이팔성 전 회장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강만수 전 회장은 서울대를 나와 이 전 대통령과 대학 동문은 아니지만 이 전 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를 오랜기간 함께 다녔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입김은 은행연합회장 선출에도 작용했다.

지난달 말 은행연합회장 선출은 ‘007작전’ 하듯 진행됐다.

당초 거론되던 인물들을 제치고 막판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후보로 급부상했다.

은행장들도 전혀 모르던 내정설이 불거져 청와대에 물으니 그대로 진행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니 ‘개콘’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코미디가 따로 없다.

10개 은행장들은 낙하산 인사에 반발해 이사회장과 총회장을 점거한 금융노조원들을 피해 ‘007작전’ 하듯 장소를 옮겨가며 하 전 행장을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선출했다.

씨티은행장까지 사임하는 배수진을 치고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밀어붙였는데 실패하니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관치 망령 떨치지 못하면 금융후진국 못 벗어난다


금융위원장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했다.

관치가 당연시되다 보니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전문성 없는 낙하산 부대가 금융권에 떼거리로 몰려오고, 정권과 친분 있는 금융권 인사들은 본업은 뒷전인 채 윗선에 줄 대는 데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 금융시장 성숙도는 2007년 144개국 중 27위에서 올해 80위로 추락했다. 국가수준은 세계 15위권이지만 관치가 금융을 망쳐놓은 결과다.

지금까지 세계 50대 은행에 끼는 금융그룹이 한 곳도 없고, ‘금융권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5일 이광구 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 등 3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한 뒤 9일 임시 이사회에 최종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낙점한 이광구 부행장을 뽑는 요식행위가 될지, 반란을 일으킬지 전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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