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문화비평]  찌라시 폭탄 맞은 문체부, ‘오인환 리더십’ 아쉽다 기사의 사진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
찌라시에 장관 폭탄발언까지 점입가경, 문화예술계는 ‘올 것이 왔다’

오인환 공보처장관. 1993년 2월 YS 문민정부 출범 당시 초대 공보처장관으로 입각한 뒤 5년 장관직을 수행하고 YS와 함께 퇴임한 유일한 각료다.

사실 그를 잘 모른다. 다만 사건팀장 당시 한번 만났다. 그런데도 21년 지난 지금 기억을 하는 이유는 뭘까.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하다. 찌라시 문건으로 온통 시끄러운 요즘 지인들과 만나 사석에서 유진룡 전 문화부장관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자연스레 오장관 이야기가 나왔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취임후 한 두달 지났을까. 오장관이 언론사 사건팀장들을 서울경찰청 부근 음식점을 초대했다. 이전에 현직 장관이 언론사 국장이나 부장급이 아닌 그 밑의 사건팀장을 초청한 적은 별로 없었다. 당시 인사검증 으로 YS정부가 휘청거릴 때였고, 사건팀 막내기자들이 주로 검증을 맡던 때였다.

그는 식사 내내 후배인 사건팀장들과 흉금을 터놨다. 기자들과 YS ‘흉’을 보거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때로는 파안대소했다. 당시 ‘YS는 못말려’ 문민정부 대통령에 대한 익살과 유머가 잇따라 출간되어 세간에 화제가 되던 때였다. 어느샌가 YS의 좌충우돌은 흠이 아닌 인간미로 변했다. ‘문민주’(文民主)라며 막걸리를 돌리던 그가 말미에 남긴 한마디가 인상깊다.

‘우리 YS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해서 신한국을 열어야지 않겠어요. 그만큼 소탈하신 분이다. 권위주의 없습니다. 소통 잘 하십니다. 젊은 여러분 보시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YS의 국가개혁 많이 도와주세요.’

역시 그는 ‘소통의 달인’ 이었다

YS 당시 몸 안사렸던 ‘오인환’을 배워야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임기 5년 내내 관용차 트렁크에 양주 J&B를 싣고 다녔다. 그는 정관계는 물론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계 인사들을 수시로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폭탄주를 권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마다 ‘J&B 폭탄주가 제일 좋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 언론사 후배가 조용히 물었다. ‘장관이면 발레타인 30년생이나 스카치블루 등 비싼 위스키를 얼마든지 마실텐데 왜 값싼 양주만 드시느냐“고 했다. 예상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려면 매일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더라. 솔직히 돈이 많이 들더라. 약사인 마누라가 도와주긴 하는데. 할 수 없자나. 내가 조금 싼 J&B가 맛있고 좋다고 꺼내놓는 수 밖에”

오장관은 취임후 365일, 5년 내내 각계인사와 소통하며 대통령을 후방지원했다. 퇴임후 그는 정치권은 물론 정부 산하기관 어디에도 얼굴 한번 내민 적이 없었다. ‘YS대통령 한분만 잘 모셨으면 내 일은 다했다’는 소신이었다. 유진룡 전 문화부장관의 폭탄발언을 보다가 언뜻 떠오른 후배기자의 전언이다.

20년 훨씬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달라진 요즘 내각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어느 장관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오히려 했다가 다른 사단이 날 지도 모를 요즘 세상이다. 더구나 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서 장관으로서 책임감과 소통력, 정치적 금도를 보았다. 요즘 ‘불통대통령’에다 ‘불통내각’이라는 비판은 사실 청와대와 내각의 소통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다. 돌이켜보면 역대 청와대와 각료들은 잘했든 못했든 결과적으로 국민들과의 소통의지만은 분명히 갖고 있었다.

상처난 문화대통령 이미지, 문화융성의 진짜 걸림돌은?

찌라시 문건이 며칠째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문화예술계 역시 문화정책이 좌초할까 하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화융성을 주도할 문화체육관광부가 오히려 찌라시 논란의 중심에 들어가더니 직전 장관의 초유의 폭탄발언으로 여론을 벌집처럼 들쑤셔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대변인 역할을 해야한다. 그러기는 커녕 도리어 찌라시 ‘의혹의 발원지’가 되어버렸다.

역대정권에서 문화부는 ‘정부의 입’이나 다름없었다.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당시 공보처는 폐지됐지만 당시 실세였던 박지원 문화부장관 취임으로 문화부의 위상은 엄청 높아졌다. 노무현정부에서 문화부의 대국민 공보기능을 빼서 국정홍보처를 따로 부활시키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문화체육관광부로 통합됐다.

문화부 업무는 통상 1차관과 2차관 소관으로 나눈다. 이명박정부에서 2차관은 위세는 대단했다. 언론 및 미디어정책, 관광, 스포츠정책을 관장하며 정부대변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신재민 2차관은 집권초기 ‘왕차관’으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후 문화정책은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문화, 예술, 미디어, 디지털콘텐츠는 창의성만 있으면 미래 먹거리를 만들 잠재력이 높다. 문화부는 문화융성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매월 ‘문화가 있는 날’까지 만들었다. 대통령 역시 영화관과 공연장을 찾고 국민들에게 ‘문화가 있는 삶’의 메시지를 강조해왔다. 문화부가 국정 핵심이라는 말도 나왔다.

실제 대통령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지난 2007년 당시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후보와 맞붙었을 때 이후보가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오자 ‘문화대통령’으로 맞대응하는 안을 검토한 적 있다. 노무현 정부 경제실정(失政)을 부각하던 때라 ‘문화대통령’은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해 폐기됐지만 이후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한다.

왕(王)차관이 쥐락펴락하는 문화부, 결국 정책시스템 오작동

문화부가 지금 올스톱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촉발된 찌라시 파문은 문화부 내부로 확대중이다. 게다가 유진룡 전 장관의 폭탄발언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도대체 문화부 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실체적 진실은 아직 드러나고 있다.

몇달전 문화부 주변에 그럴싸한 풍문이 떠돌았다. 스포츠경영을 전공한 교수출신이 문화부 2차관에 발탁된 배경 등 숱한 ‘카더라통신’이었다. 실세니 뭐니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나중에 보니 2차관은 정말 한방 있었다. 소관업무 중 골치아픈 미디어정책은 1차관에게 미루고 2차관이 사실상 문화 예술 관광 체육 등 핵심을 장악하는 ‘정치적 위력’을 과시했다. 갓 입각한 문화부장관은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이니 2차관과 부딪칠 일도 없었다. 그러던 중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2차관을 함께 묶어 생각하면 정확하다’는 유진룡 전장관의 한마디는 일파만파였다. 풍문이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지금 ‘정윤회’ 파문은 문화부를 짓누르고 있다. 문화부 산하 승마협회를 둘러싼 특혜여부와 정씨의 ‘입김’ 논란은 여전히 찌라시 정국 핵심이다. 언론이 연일 폭로전에 나서는 요즘 쏟아지는 ‘찌라시 속보’를 매일 따라잡기 조차 벅찰 정도다.

그런데 누구도 선뜻 ‘총대’를 메고 나서질 않는다. 청와대 비서실은 물론 총리실, 정부대변인 문화부, 특히 논란의 당사자인 2차관실 어느 곳에서도 총대는커녕 반박이나, 해명조차 없다.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다. 찌라시를 모두 인정한다는 것인지, 기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써주지 않는 것인지, 기자회견을 해도, 보도자료를 돌려도 소용없다고 자포자기 한 것인지, 아니면 ‘어짜피 폭우가 쏟아질 때는 잠시 피해있는 게 상책’이란 처세를 실천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들 ‘사실이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하며 입을 닫고 있다.

대통령 뒤로 숨는 각료들, ‘아마추어 전문가’의 전형

대통령 그늘로 모두가 숨어버렸다. 찌라시 논란의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도, 문화부도 한발 뺀채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

‘법대로’만 외친다. 당사자들은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면서 언론사들을 상대로 잇따라 고소장을 남발하고 있다. 사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법대로’는 민주주의 골간인 ‘대화와 타협’의 장을 없애버린다. 세상 경험상 ‘법대로 하자’는 말은 대화나 타협은 물론 모든 인간관계마저 파탄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대로’란 말은 ‘저는 절대 아닙니다’로 해석된다.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결백만을 주장하는 이기적 행위다. 그 대신 국가브랜드를 심각하게 갉아먹는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들이 없다. 문화부가 손놓고 있는 사이 외신들의 비판보도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타임 보도에 이어 워싱턴포스트까지는 11일 급기야 한국의 언론자유까지 언급하고 나왔다.

나아가 창조경제의 먹거리인 ‘문화3.0’ 정책도 휘청거리고 있다. 한류스타들, 특히 가수 싸이가 기껏 올려놓은 문화적 결실을 까먹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전문성없는 인사들을 들여놓을 때 이미 알아봤다’고 혀를 차고 있다.

무늬만 그럴듯한 ‘아마츄어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지적이다. 그들은 소신도, 책임도, 최소한의 국정철학조차 공유하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손을 놓은 문화부는 물론 정부 어디에도 몸을 던지는 ‘오인환’이 보이지 않는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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