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7. 최경환 부총리의 ‘구조개혁’ 외침이 미덥지 않은 이유 기사의 사진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페르시아군의 침략에 맞서다 장렬한 최후를 맞은 그리스 전사가 기꺼이 되자며 비장한 이 말을 한 사람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지난 2011년 6월 기재부 장관 취임식에서다.

그는 한달 뒤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도 했다. “포크배럴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고 재정지출을 지속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등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

‘포크배럴(pork barrel)’, 직역하면 돼지 여물통이다. 흔히 미국 정치인들이 지역구 사업을 위해 정부 예산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달려드는 구태를 빗대 쓰인다. 지체 높으신 분들(?)을 여물통에 달려드는 돼지에 비유했으니 국회의원들이 발끈한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정치권에 비장하게 맞서겠다고 했던 그도 결국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의 복지공약을 300전사처럼 모두 막아내진 못했다.

앞서 박 전 장관에게 바통을 넘겨줬던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도 2011년 퇴임하면서 후배들에게 결연한 당부를 했다.

“최근 유행처럼 번져 나가는 ‘무상’이라는 주술에 맞서다가 기재부가 사방에서 고립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국가재정의 마지막 방파제, 파수꾼이 돼야 한다.”

그는 20년 논란거리였던 박카스의 슈퍼 판매를 정치인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과 약사들의 반대에 맞서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서비스산업 육성의 핵심인 영리병원 설립을 관철시키고자 대통령 앞에서 정치인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과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적 요구가 있더라도 ‘노(No)’라고 해야 할 때는 분명히 노라고 말하겠다. 모든 것을 칼로 무 베듯 경제논리만으로 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정치권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며 소신껏 해나가겠다.”

이 말은 2001년 1월 부총리 취임 간담회에서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했다.

강단 있었던 역대 장관들이 생각난 것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했던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 길을 찾기는커녕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해서다.

지난 7월 취임 이후 40조원 이상 재정을 쏟아붓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옆구리를 찔러 금리인하를 주문하며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경기가 살아나기는커녕 안개가 계속 걷히지 않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실탄은 다 떨어졌는데 천수답처럼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제 때에 뒷심을 보태주지 않은 정치권 탓만 하기도 멋쩍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고 나섰던 최 부총리가 이번엔 우리 사회의 오래된 환부에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나섰다.

최 부총리는 지난 22일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구조개혁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내년도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개선’에 두겠다”며 “더 이상 구조개혁을 미루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을 탈피해 다시 한번 도약하려면 경제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실천 의지다.

구조개혁을 하려면 대통령 임기 3년차에 접어들고 대형 선거가 없는 내년이 가장 적기다. 내년을 넘기면 구조개혁은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노동분야에선 벌써부터 정규직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도록 해서 ‘장그래’(비정규직·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를 보호하자는 거냐며 반발이 심하다.

공공부문 개혁은 칼을 빼들려다 도로 집어넣는 신세가 됐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내년 5월 초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6월 사학연금, 10월 군인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카드를 접었다.

교사들과 군인들의 표를 의식한 새누리당의 반발 때문이다. 이러니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자란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 경제에 최대 걸림돌은 ‘정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정치인들이야 나라가 망하든 말든 표에만 매달리는 집단이라고 쳐도 “욕을 먹을 각오로 일하겠다”고 했던 경제수장이 냉큼 직역연금 개혁카드를 거둬들인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여의도 정치인의 습성을 못 벗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항간에 나도는 말처럼 차기 대권 다툼에서 ‘무대’(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대항마가 되려는 행보의 일환은 아닌지 의심쩍다.

취임 후 지금까지 최 부총리의 5개월간 행보를 복기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 장관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기재부 출신 후배 고위직들의 다음 자리를 마련해주는 데만 약발이 먹히는 듯해서다.

구조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여의도에 대한 미련은 벗어던져라. 여의도 국회로 돌아갈 ‘다리’를 불사르고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낸다면 역사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다.

기재부 직원들이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최 부총리를 뽑은 것도 정치권과 청와대 요구에 뚝심 있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장관을 기대했기 때문일 거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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