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8. 청소아줌마가 회장님이라고? 기사의 사진
“지치고 힘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어느덧 새벽이 찾아오듯 그렇게 새벽은 우리에게 올 것이다. 새벽은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최근 임직원들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송년 e카드 내용이다.

현 회장은 그러면서 “다가올 을미년 우리 현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하자”고 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밖에는 못 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시아버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6년 반가량 꽉 막혀있는 대북사업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현 회장은 지난 24일 북한 초청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를 만나고 돌아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를 맞아 조의를 표한데 대한 감사와 현대 사업에 언제나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현 회장이 평양을 방문하면 반갑게 맞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새벽이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시숙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싸우던 2010년 연말에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부터 희망이다’라는 시구를 인용해 “우리 현대그룹이 지나온 길과 많이 닮은 것같다. 우리는 평탄한 길이나 오르막길을 마다치 않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분이 있는 한 여기부터가 희망입니다”라고 송년카드를 보냈다.

출입기자들에게는 ‘기자 분들의 펜에 거는 기대’라는 제목의 연하장을 보내 “우리는 가끔 작은 손의 위력을 잊곤 한다. 부디 내년에도 교만한 강자보다 겸손한 약자가,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희망을 품는 그런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의 주식매각 양해각서(MOU) 해지를 결정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게 된 절박한 상황에서 자본의 위력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보도’를 호소한 것이다.


조용한 재벌사모님에서 여장부 회장으로 서기까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자살하기 전까지 현 회장은 현대가 며느리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식들 뒷바라지와 내조에 헌신하는 주부였다.

현대가는 유교적 가풍이 심하다. 정주영 창업주가 매일 새벽 5시에 청운동 자택에 자식들을 불러모아 함께 식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작고한 2001년 3월, 5일장이 치러지는 내내 현대가 아들들과 손자들은 문상객을 맞았지만 며느리들은 소복을 차려입고 뒷방에 모여앉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숨겨진 존재였다.

당시 정 명예회장 영결식이 열린 경기도 하남 선영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관식을 취재하기 위해 산 중턱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서려 하자 현대쪽 직원들이 가로막았다. 여자는 올라올 수 없다는 거였다. 할 수 없이 단상 뒤로 돌아가 멀찌감치서 하관식을 지켜봐야 했다.

현대가 며느리들이 외부 활동보다 그림자 내조를 하며 조용히 세상과 담 쌓고 지낸 것도 유교적 가풍 영향이 컸을 거다.

그렇게 조용하게 살았던 현정은 회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이 숨지면서다.

현 회장이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업인 대북사업을 우여곡절 속에서도 용단 있게 밀고 나가고 시숙과 시삼촌에게까지 ‘맞짱’ 뜨며 10여년간 현대를 이끌고 온 것은 사실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문희 여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누나다. 김문희 이사장은 현영원 신한해운 회장과 결혼해 딸 넷을 뒀는데 그 중의 둘째딸이 현정은 회장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75년 1월 울산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아버지를 따라온 현정은 회장을 보고 며느리를 삼을 생각을 하고 군대 간 아들(정몽헌 회장)이 휴가 나오자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떴을 때 민간봉사단체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 회원들은 신문과 방송을 보며 두번 놀랐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어떤 날은 머리의 물기도 말리지 않은 파마머리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의 허름한 광화문 사무실에 사과가 잔뜩 들어있는 검은 과일봉지를 들고 나타나던 그 ‘마음씨 좋은 아줌마’가 재벌 사모님이라니.

국내 재벌 총수의 갑작스런 투신자살 소식도 놀라웠지만 TV에 비친 재벌 총수의 미망인이 자신들과 함께 다니며 혼자 사는 노인들의 빨래를 해주고 사무실 바닥청소와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던 현정은씨라는 사실에 더욱 놀란 것.

1999년 처음 인추협 사무실을 찾은 현 회장은 회원들과 함께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고 도배나 집안청소를 해주며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인추협이 ‘내 집앞 눈 쓸기’ 입법청원을 낼 때는 현 회장의 공이 제일 컸다. 현 회장을 포함해 다들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서명을 받았는데 현 회장은 무려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들고 왔다고 한다. 당시 명단에는 정몽헌 회장을 비롯, 정씨 일가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 회장은 당시 고교생이던 막내아들을 사무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봉사활동에도 참여시키고 컴퓨터 자료정리를 도와주도록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 모자(母子)가 재벌가 사모님과 외동아들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사회공헌 기획시리즈를 연재하면서 2004년 알게 된 현정은 회장의 미담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처럼 현대그룹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일이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골프와 해외여행 등으로 소일하는 TV 속 재벌가 며느리 모습과 달리 소박하게 살아온 탓에 현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에 올라 업무상 뒤늦게 골프를 배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물론 몇 년 뒤에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새벽이 찾아오듯 그렇게 새벽은 우리에게 온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지난달까지 현대아산의 매출손실은 8094억원에 달한다. 개성관광 중단에 따른 매출손실은 1252억원으로 두 사업을 합친 손실이 1조원에 육박한다.

아버지가 소 판 돈 70원을 훔쳐 고향 통천을 등진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버지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서산농장을 일궜고 그 땅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이끌고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넘었다. 그해 11월에는 금강산 관광선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2000년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도 정몽헌 회장은 금강산관광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시작한 대북사업은 남편을 거쳐 이젠 며느리에게 넘어왔다. 수익을 좇는 기업 속성으로 보면 십수년간 적자를 내는 금강산관광 사업은 포기해야 하지만 현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 회장은 2009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북사업은 시아버님이 시작하신 일이다. 북한이 고향이셔서 늘 깊은 애정을 갖고 계셨다. 시아버님께서 북에 계신 분들이 가난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고 이런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신 것같다. 시아버님이 처음 시작하셨을 때는 개인적인 이유가 더 컸던 것같다. 물론 나는 사업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남편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의 믿음대로 새해에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새벽이 어서 오기를 기원해본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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