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①극장의 추억 기사의 사진
연전 처음 ‘홈 시어터’라는 것을 장만하고 나서 첫 DVD 영화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만든 ‘지옥의 묵시록’을 봤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던 시절 루이 말이나 장 뤽 고다르류의 ‘고급 영화’에 대한 갈증을 달래주던(사실은 장 피에르 멜빌식의 대중영화도 많았지만) 프랑스문화원의 50~60석짜리 영사실에 비치된 스크린만한 커다란 TV 화면에 비친 고화질 영상과 함께 방 네 귀퉁이에 설치한 5.1 채널 스피커들을 통해 서라운드로 뱃속이 쿵쿵 울리도록 퍼져 나오던 헬기(건십)의 로터 돌아가는 소리를 접했을 때의 감격이란. 극장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반세기 넘게 내가 들어가 앉아있어야 했던 시커먼 극장이 거꾸로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이제는 집에 편히 앉아 극장 못지않은 영상과 음향으로 영화를 즐기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장이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특히 물질적 정신적으로 궁핍하던 시절 거의 유일한 문화 향유의 장(場)으로서 영화를 틀어주던 극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스스로 ‘무비 버프(movie buff)’, 또는 ‘시네마 키드’임을 자부하는 나와 극장의 관계도 대단했다. 가히 ‘운명적’인 것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중고교시절 집이 대한극장 뒤 필동에 있었다. 그리고 비원 옆에 있는 학교까지 일직선으로 난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당시 내 등굣길을 볼작시면 이랬다. 집에서 나와 대한극장과 퇴계로 건너편 아데네극장 앞을 거쳐 스카라극장과 명보극장을 지난다. 그러면 을지로다. 을지로를 건너 청계천과 종로 사이에는 세기극장(지금의 서울극장)이 있다. 그 앞으로 해서 종로를 건너면 마주보고 사이좋게 서 있는 피카디리와 단성사를 만난다. 학교를 오가자면 이 모든 극장들에 붙어있는 간판과 사진을 싫어도 보게 된다. 상영작은 물론이고 다음 프로까지 뜨르르 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이 열거된 극장들의 공통점을 아시는지? 그렇다. 명색이 ‘학생극장’으로 출발한 아데네 극장만 빼고는 모두 ‘개봉관’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해 설명을 해보자. 개봉관이란 영화가 처음 상영되는 곳이고, 지정된 상영시간에 지정된 좌석에 앉아 점잖게 영화를 보는 극장이다. 입석은 안 된다. 또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입장 불가다. 그럼 개봉관이 아닌 극장은? ‘재개봉관’이다. 아데네극장이 그 예다. 개봉관에서 상영이 종료되면 일정기간이 지난 뒤 필름을 가져다 재상영하는 곳으로 지정된 상영시간이나 좌석이 없다. 좌석 사이 통로에 서서 영화를 볼 수 있고, 상영 도중이라도 아무 때나 입장이 가능하다. 재개봉관을 통과한 필름은 또 일정기간이 지난 뒤 ‘동시상영관’으로 간다. 한꺼번에 두 편의 영화를 돌리는 곳이다. 이때쯤 되면 필름은 낡아서 비가 오거나(필름에 난 흠집 탓에 화면에 줄이 죽죽 그어지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툭툭 끊기기 일쑤다. 그래도 뒤로 갈수록 입장료가 싸지니 돈이 없는 사람들, 학생들은 재개봉관 이하의 극장을 많이 찾곤 했다.

홈시어터가 널리 보급되고 최신식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즐비한 요즘 이런 ‘옛날 극장’들은 모두 흘러간 유물이 됐다. 그러나 극장이 더 이상 영화를 보기 위한 필수요소가 아니고, 극장의 형태는 바뀌었어도 아직 영화 소비의 주 통로가 여전히 극장인 한 ‘극장의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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