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②영화의 색깔 기사의 사진
지난해 연말 개봉한 한편의 영화를 두고 진보 보수 간 이념논쟁이 거세다. ‘국제시장’ 얘기다.

진보 쪽에서는 ‘과거를 미화하는 정치적 선전영화’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 측에서는 ‘우리나라가 민초들의 피와 땀, 희생으로 만들어진 나라임을 말해주는 영화’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정작 감독은 이 영화가 이념적인 편향성, 또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가족 휴먼 드라마’이자 험난한 역사를 살아온 ‘아버지세대에 바치는 헌사’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왜 그랬냐고 추궁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영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영화란 숙명적으로 선전 선동의 가장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얼마든지 선전 선동 매체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인쇄매체처럼 문자를 통한 선전 선동은 그 대상이 기본적으로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논리력 추리력 판단력 등 상당 수준의 지성을 갖춰야 가능하다. 그러나 영상과 언어를 통한 영화라는 매체는 수용자가 지성을 갖출 필요가 없다. 눈과 귀만 있으면 된다. 이런 영화의 특성은 초창기부터 인식됐고 실제로 널리 활용됐다.

오늘날 현대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소련영화 ‘전함 포템킨(1925)’. 몽타주기법의 효시로 기림 받지만 그 내용상으로는 러시아 공산혁명을 정당화하는 선전영화에 불과하다. 또 레니 리히펜슈탈의 다큐멘터리영화 ‘올림피아-민족의 제전과 미의 제전(1936)’은 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웅대한 스케일로 담아낸 획기적인 대작 기록영화였지만 역시 그 내용은 나치즘 찬가였다.



물론 영화가 공산주의나 나치스 등 부정적인 선전매체로만 이용된 것은 아니다. 일찍이 1930년에 만들어진 루이스 마일스톤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오늘날까지 그만한 반전(反戰)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다. 또 1959년작인 스탠리 크레이머의 ‘그날이 오면(On the Beach)'만한 반핵(反核)영화도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새 좌파의 득세와 함께 친북 반미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억지로라도 그같은 메시지를 끼워넣는 선전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반전과 환상적 휴머니즘을 표방한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국군과 미군이 손잡고 침략자 북한군과 싸운 6.25전쟁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북한군은 형제로, 미군은 악으로 묘사한 ‘반미(反美)’영화다.



순수 오락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물론 한국형 재난영화인 김성수 감독의 ‘감기(2013)’조차 다를 바 없다. ‘괴물’의 경우 괴물의 탄생은 미군이 한강에 무단투기한 오염물질 탓이었고, ‘감기’에서는 미국이 전시도 아닌데 한국군의 작전을 지휘, 통제하는가 하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폭격까지 하려 한다. 명백한 좌파적 반미 선전영화들이다.




그러니 윤제균 감독이 아무리 정치색은 없다고 주장해봐야 만든 사람의 의도를 떠나 영화가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그간 ‘좌파적’ 시각의 영화들을 만들고 거기에영향 받아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국제시장’은 ‘보수 반동’들의 영화일 뿐이니 이념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의 ‘만들어낸 영웅들’을 다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2006)’을 놓고 전쟁이나 미군, 미국의 과거를 미화한 수꼴 선전영화라고 언성을 높이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이 궁금하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