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0. ‘엄친딸’ 두고 속끓이는 장관님들 기사의 사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 졸업에 몇 개 외국어를 구사하며 외모도 출중한 ‘엄친딸’을 둬 부러움을 사던 A장관. 딸이 모 방송국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나설 때만 해도 겉으로는 딸을 못마땅해했지만 사적모임에선 기자들에게 딸의 방송국 합격 사실을 슬쩍 흘려주며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모임에서 딸 얘기가 나오고 딸에 관한 새로운 뉴스를 들려주면 “그런 일이 있었느냐. 나도 요즘 우리 애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쿨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요즘엔 달라졌다.

그가 소속된 정부 부처에선 딸 얘기를 하는 게 금기시되다시피했다.

‘잘 나가는 딸’은 ‘너무 잘 나가’ 광고모델이나 다른 방송사 출연이 잦아지다보니 네티즌들 사이에선 아빠보다 더 유명해졌다.

두뇌싸움을 벌이는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나 다음날이면 인터넷에서 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할 정도.

여기까지는 명문대 출신에 어울리는 이미지여서 그래도 봐줄 만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에 ‘OOO 몸매’ ‘베이글 볼륨에 흰 엉밑살 드러낸 각선미’ 등의 기사가 사진이나 동영상과 함께 나돌기 시작하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래도 딸 사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 없어 인터넷 기사를 아예 보지도 않고, 속앓이만 하는 중이다.

고전무용을 한 이 장관의 부인 역시 단아한 자태와 여리여리한 외모가 확 눈에 띄는 미인이고 둘째딸 역시 미국 명문대에 유학 중이다.

잘 난 두 딸을 둔 이 장관은 예전에는 사윗감으로 기자와 공무원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단다. 살아보니 그 중에서도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 기자와 공무원이라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노처녀 딸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고 한 걱정을 하던 B장관.

결혼한 여기자들과 만날 때면 “여자들도 일을 해야 한다. 여러분들 참 대단하다. 가정일을 병행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라며 대견해하곤 했다.

그러면서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은 여기자를 보고는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요즘 남자들, 다 별 볼일 없다. 똑똑한 여자들은 많은데”라며 위로(?)를 건네곤 했다.

막상 이렇게 얘기했던 B장관도 자식 문제에 부닥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방송국 PD로, 변호사로, 글로벌 기업 임원으로 다양한 직업을 넘나들며 일에 빠져사는 딸을 보면 한숨부터 푹 쉬었다.

그러던 이 장관에게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마흔줄을 넘어선 딸이 ‘심하게’ 연하인 남친과 결혼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희애와 유아인이 열연했던 드라마 ‘밀회’ 수준의 만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이 둘의 나이 차가 크긴 큰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니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시원시원한 외모에 목소리도 우렁찬 이 장관의 부인 역시 여걸이다. 몇 년 전 상가에서 본 장관 사모님은 좌중을 휘어잡고 2시간 가량을 혼자 얘기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다. 앞에 앉은 간부들이 웃음을 그치지 않았을 정도.

전직 총리의 여동생인 이 장관 사모님은 영어실력도 뛰어나 장관은 항상 “우리 집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것은 나”라고 말하곤 했다.

아픈 딸 때문에 말 못할 마음고생을 겪은 가슴 아픈 장관도 있다.

C장관은 공직에서 나와 금융그룹 지주회사 회장을 맡았다. ‘생계형 낙하산’이니 ‘회전문 인사의 절정’이니 비판들이 쏟아졌지만 당시 항간에 나돈 소문은 딸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청첩장을 돌리려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는 후배들의 만류에 그만뒀다는 후문이다.

당시만 해도 공직자들이 자녀 혼사를 알리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갑’이 혼사를 알리면 힘없는 ‘을’들이 돈 봉투를 들고 알아서 줄 서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

이 장관, 돌직구 스타일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억울한 기사가 나오면 기사에 ‘빨간줄’ 그어가며 직접 기자에게 전화 걸어 조목조목 따진다. 정책을 발표했을 때도 비딱한 기사가 나오면 “기자들이 왜 알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신념이 아주 강하다.

그러고보면 장관이나 공직자들도 모두 아버지다. 자식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며칠 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유출 관련 현안보고’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자식이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맨 지 1년이 넘었는데 자주 가보지도 못해 인간적으로 매우 아프다”고 했다.

어느 장관은 백혈병으로 투병해온 아들을 위해 골수이식 수술을 받으러 가면서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입원했다가 하루 만에 퇴원해 일하러 갔다. 얼마 뒤 아들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아들을 땅에 묻은 날도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챙겼다.

아무리 선공후사(先公後私)라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범인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숙연해지는 모습들이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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