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특파원의 워싱턴 통신] 오바마 ‘운명의 급반전’ 기사의 사진
‘정치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은 한국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운명이 꼭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2014년은 힘든 해였다. 특히 상원 과반의석 마저 공화당에 내준 11월 4일 중간선거일은 가장 암울한 하루였을 것이다. 공화당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원들은 승리 패배의 책임을 놓고 서로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민주당원들의 불만의 중심에는 ‘무능한’ 오바마 대통령이 있었다.

선거 결과는 남은 2년 임기가 오바마에게 얼마나 가혹한 시간일지 암시하는 ‘전조(前兆)’로 보였다.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이 이민개혁과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등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국정 어젠다를 좌초시킬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외정책 분야에서도 개입주의적이고 강경한 공화당 노선이 오바마의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눌려버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 놀라운 급반전이 일어났다. 114기 새 의회가 개회했지만 공화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공화당의 1인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의장 선거에서 당내 반대표가 25표에 이르러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다.

공화당 주도 하원을 통과한 키스톤XL 송유관 건설법안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공언했지만, 여론은 오바마에게 불리하지 않아 보인다.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송유관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행정부의 논리가 더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의 탄탄한 회복세가 오바마에게 큰 도움이 됐다. 여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국제유가 급락은 미국 가계의 소비 여력을 확대해 미국인들의 경제낙관론에 한층 힘을 보내고 있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분야 ‘실패’도 국제 유가 급락으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배럴당 115달러에 달했던 원유 가격은 최근 4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주로 석유자원을 무기로 미국과 각을 세웠던 나라들이 한꺼번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유가 급락이 워낙 급작스럽고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서방의 경제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버텨보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희망은 산산조각 나고 있다. 전 러시아 재무장관 이자 푸틴 대통령의 친구인 알렉세이 쿠드린 조차 최근 “완전한 경제위기” 가능성을 경고할 정도다. 미국의 최대 적성국의 하나인 이란도 유가 급락으로 매달 10억 달러(약 1조990억원) 가량 재정수입이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내년 7월로 기한이 연장된 이란 내 핵프로그램 중단을 위한 이란과 서방간 협상에서도 미국이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미의 최대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도 휘청대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운명의 반전은 벤 버냉키(전 연방준비제도 의장)라는 천재적인 경제학자가 오래 전 씨를 뿌린 ‘양적 완화’, 급작스런 국제 유가 하락 등 ‘우연’의 덕분이다. 하지만 유심히 봐야 할 게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 얻은 교훈을 바로 실행에 옮긴 오바마 대통령의 유연성과 결단력이다.

상당수 워싱턴 분석가들은 ‘콧대 높고 오만한’ 오바마 대통령의 성격으로 볼 때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노선’을 수정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중간선거 후 20일 만에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 과격무장그룹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전략 부재 등을 이유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대외정책 분야의 거듭된 혼선에 대한 개선에 돌입한 것이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추진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도 ‘생각 많은 햄릿’형이라는 지적을 받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공화당의 격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500만 명의 불법이민자에 합법적 체류 권한을 부여하는 이민개혁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승부사로서의 결단력을 보여준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지 반전은 대부분이 행운이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중간선거 참패 후 철저한 자기반성과 백악관 외부 인사들을 포함한 전문가·자문그룹과의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각종 스캔들로 휘청대는 청와대도 실패에서 크게 배운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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