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문화비평] 행복하지 않은 당신 꾸베인가 리스본인가 기사의 사진
행복하지 않은 당신의 선택? <꾸베>인가 <리스본>인가

분노의 한국인, 행복론에 폭발적 관심

스스로 더욱 불행해졌다고 느낀다. 갈수록 한국사회가 분노의 장으로 변해가는 것 아닌가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리 팍팍한 현실이라지만 젊은이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온통 어지럽기만 할 뿐 통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국사회를 집단트라우마에 빠뜨린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두드러진 우리사회의 현상이다. 1년 내내 바람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말 청와대 ‘찌라시’ 유출과 항명파동, 흉악범죄, 경제불황속에 터진 연말정산 후폭풍까지 불어닥친 지금 정말 우울하다. IMF사태를 제외하면 국민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을 맴돌 것이란 혹평도 들린다. 여기서 2015년 벽두에 던지는 질문 하나.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는가!

지난해 행복론(幸福論)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그 바람에 불황이 닥친 서점가에도 행복론을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들이 한동안 진열대를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꾸베씨의 행복여행>(He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프랑스와 를로르作)과 <리스본 야간열차>(Night Train to Lisbon, 파스칼 메르시어作)이다.

둘 다 원작소설을 토대로 영화까지 제작되었다. 지난해 영화 개봉 후 원작소설들은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도 이른바 스테디 ‘미디어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원작소설과 영화의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6월 먼저 개봉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빌 어거스트 감독)는 당시 호평을 받았다. 반면 지난해 11월 말 개봉된 영화 <꾸베씨의 행복여행>(피터 첼섬 감독)은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한 영화<인터스텔라>에 가려 빛이 바래긴 했지만 해가 바뀐 지금도 여운을 남기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스토리다. 두 주인공은 행복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런던의 정신과의사 꾸베,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 모두 번민끝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결론짓고 전혀 경험하지 못한 또다른 세계로 떠난다.

행복여행을 떠난 주인공들의 최종결론은?

소설속 두 주인공은 그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부인까지 의약업을 하는 정신과의사의 스토리는 자칫 감상주의, 심지어 배부른 소리란 소리를 들을 법도 하다. ‘꾸베와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디 같냐’는 항변도 있겠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교수란 직업이 유럽사회에서 전혀 남부러울 것이 없는 만큼 같은 비난을 받을수 있다. 하지만 행복을 찾는 인간상이 주제인 만큼 영화 그 자체로만 보자. 정말 그들은 지독하게 권태로운 일상의 반복, 자신이 처한 그 현실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결단을 내린다.

두사람 모두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두사람이 도달한 결론은 전혀 다르다.

먼저 <리스본행 열차>는 현실로부터의 용기있는 일탈(逸脫), 그리고 젊은 시절 열정으로 새로이 시작하는 인생도전이 주제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 우주공간처럼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자신을 갖다놓는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스페인 내전 당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젊은이들의 열정을 발견한다. 젊음의 열정이 쳇바퀴처럼 도는 지루한 현실에서 새로운 인생항로는 밝히는 등불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석회석처럼 굳어버린줄만 알았던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움터오는 새로운 열망은 전혀 다른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만든다.

<꾸베씨의 행복여행>. 꾸베는 전혀 다른 행복의 기준을 들고 4개 대륙을 돌아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오로지 약이름만 찾으며 수익만 좇던 부인 클라라, 매번 반복되는 정신상담의 권태로움,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행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행복의 가치를 발견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는 돈과 명예, 가족, 첫사랑 등 모든 사람들이 늘상 행복의 가치로 떠올리는 행복의 조건들 역시 종국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클라라로 되돌아온 익숙한 일상이지만 그것은 전혀 과거와 다른 새로움으로 자신에게 다가섰다.

이 대목에서 변증법적 논리와 맞닺는다. ‘현실-또다른 현실-전혀 새로운 현실’의 정-반-합(正-反-合) 구조의 스토리가 그렇다. 꾸베씨는 무소유의 삶을 사는 중국 티벳의 산사(山寺)에서 내려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하이 빌딩숲에서 만난 은행가까지 온갖 군상(群像)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전혀 다른 행복의 기준들을 체험하게 된다.

이어 아프리카에서 체험한 무정부상태와 반인권, 부족들의 순수인간애, 동료 의료봉사까지 다양한 행복의 가치들이 등장한다. 이어 캐나다에서 만난 첫 애인은 자신이 얼마나 첫사랑에 대한 ‘이기적 감상주의’에 빠졌는가를 뼈에 사무치게 깨닫게 만든다.

그렇게 여행 끝자락에서 발견한 행복의 ‘오로라’. 노벨상을 수상한 대학교수의 뇌파실험에서 우연히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자아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것은 지루했고, 권태롭고, 그래서 애써 탈출하고 싶었던 일상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발견이었다. 꾸베씨가 ‘행복해지는 열 여섯까지 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꾸베가 얻은 ‘행복해지는 열여섯가지 팁’

(1)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행복한 기분을 망친다 (2) 사람들은 돈이나 지위를 갖는게 행복이라 생각한다. (3) 사람들은 행복이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4)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할 자유가 행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5)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게 행복일 수도 있다. (6) 불행을 피하는게 행복의 길은 아니다. (7) 행복은 일종의 부수적 효과다 (8) 행복은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다 (9) 행복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이다 (10) 고구마 스튜! (11) 두려움은 행복을 가로막는다 (12) 행복이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3) 행복은 좋을 일을 기뻐할 줄 아는 것이다 (14) 사랑은 귀 기울여주는 것이다 (15) 향수에 젖는 것은 촌스러운 것이다 (16) 우리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

영화 <국제시장>이 세대를 넘어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국인들은 떠올린다. ‘과거를 보면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과연 나는 지금 행복한가’ 자신에게 되묻는다.

상당수 한국인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 지금 지나친 우울증과 좌절감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성향과 집단분노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해와 타협, 용서, 그리고 포용이 부족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아가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외면하려한다. 고되고 힘든 현실을 벗어나려는 집단심리가 어느 때보다도 요즘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과거 좋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거나 현실적 공간을 탈출하고픈 사회심리학적 배경이 남아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나는 또다른 문화트렌드가 복고(復古)와 일상탈출, 그리고 가족애다.

최근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복고의 불을 당겼다. 어딜가나 80~90년대 당시 귀익은 음악들이 귓전을 때린다. 그룹 ‘터보’의 강렬한 음향이 거리를 휘감는다. tvN의 <응답하라 1994>와 KBS <참좋은 시절>까지 TV드라마도 복고바람에 시청률 이 껑충 뛰어오른다. 이른바 ‘7080’ 통기타 음악부터 고(故)김광석의 노래까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에 다들 몸을 싣는 분위기다. 문화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복고와 일상탈출, 가족애는 현실탈출의 3대 문화트렌드

한국사회는 ‘돈’이란 물질적 가치에 짓눌려있다. 유무형의 가치있는 정신과 명예도 점점 배척되거나 사라진다.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외침마저 점점 더 묻힌다. 심지어 가족 등 ‘나’를 에워싼 ‘익숙하지만 값진 가치’들마저 외면당하기도 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낯익은 일상’에 대한 낯설기를 통해 새로운 열정과 꿈, 도전이란 메시지를 던져준다. 소설과 영화에서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으로 돌아오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사랑의 열정을 싹틔우는 중년의 뒷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꾸베씨의 행복여행>은 오랫동안 지루했던 나의 일상에 대한 낯설기를 통해 새로운 눈으로 행복을 재발견하게 한다. 돌아온 나의 일상의 모든 것은 과거와 똑같아 보이지만 그것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차원이다.

<리스본>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꾸베>를 따라 갈 것인가.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가치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한국사회에 속한 나’는 과연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참고로 필자는 불과 누적관람객 12만명에 불과한 <꾸베>에 진한 여운을 느낀다. ‘우리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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