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씨의 미술바구니] 1. 이중섭 전시에서 돌아보는 가장으로 산다는 것 기사의 사진
전쟁의 상처가 채 회복되지 않은 1955년 1월이지요. 화가 이중섭(1916∼1956)은 겨울 칼바람에도 신이 났습니다.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기도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그 그림들을 다 팔면 살기가 힘들다고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보낸 일본인 아내 이남덕(마사코)과 두 아들 태현, 태성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지요.

얼마나 신이 났던지 전시 준비하는 과정을 편지로 써서 현해탄 너머로 부치기도 했습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출품작 45점 가운데 20점 가량이 팔렸거든요. 구입자 중에는 미국문화원 외교관이자 서울대 강사를 지냈던 아더 맥타카트도라는 미국인도 있었지요. 사실, 그림하면 한국화가 대세이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서양화로서 그림을 팔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화가였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수금이 안됐습니다. 시쳇말로 그림을 산 사람들이 돈을 떼먹은 거지요. 대구에서 이어서 가진 개인전마저 판매가 엉망이 됐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 가장 이중섭은 폐인이 됐습니다. 결국 건강이 악화돼 1956년 9월 40세의 한창 나이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기러기 아빠’ 이중섭이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가족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내달 22일까지 열리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입니다. 당시 맥타카트가 구입해 갔던 은지화 3점도 볼 수 있습니다. 60년 만에 한국에 공개되는 거지요. 맥타카트로부터 기증 받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이 이례적으로 상업 갤러리 전시에 대여해 준 거랍니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는 “국내에서 이중섭 전시는 1972년, 99년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하네요. 기존 전시와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동안의 전시에서 이중섭의 간판이 되다시피 한 소 그림에 가려졌던 가족이란 테마를 조명해보자는 의도”라고 하네요.

모마 소장 은지화 중 2점은 ‘낙원의 가족’ ‘복숭아 밭에서 노는 아이들’ 등 가족이 도원에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나머지 한 점인 ‘신문 보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신문을 보거나 파는 사람을 그린 건데, 당시 이승만 독재에 대한 비판을 담은 거라고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이 은지화에선 이중섭의 지금까지 알려졌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채색이 시도돼 눈길을 끕니다. 그만큼 생기가 있지요.

결혼 전 마사코를 향한 연애 감정을 담은 엽서 그림도 처음 나왔다고 하네요. 관제엽서에 그린 간결한 선묘의 남녀는 데생력이 탁월합니다.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에는 혹시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활을 쏘는 남자’에는 이제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확신하는 남자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이 그림들은 이중섭의 초창기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때를 그 때를 연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답니다.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그림 편지도 20여점 선보입니다. 이중섭이 쓴 일본어 손글씨도 가감 없이 공개했지요. 일부가 대중적인 전시에 나오기는 했는데, 반일 정서 등을 고려해 번역된 내용과 그림만 소개됐었다고 하네요.

이중섭이 아내에게 쓴 편지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입니다.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아내에게 ‘발가락군’ ‘아스파라거스군’이라는 애칭을 붙인 이 남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라며 애틋한 그리움을 전합니다. 두 아이에게는 “오늘 종이가 떨어져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중략) 다음에는 재미있는 그림을 한 장씩 그려서 편지와 함께 보내줄게”라고 합니다. 참, 정다운 아빠지요. 편지글 가장자리에는 늘 그림을 그렸지요. 가족이 두레상처럼 모여 있는 단란한 모습이나, 그림 그리는 자신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편지에 복숭아를 그려 나아지기를 바랐지요.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배를 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내기도 했지요. 그런 남편을 둔 이남덕(95) 여사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가 이중섭을 회고하는, 일본에서 제작한 기록영화 일부가 전시장 한 켠에서 상연됩니다.



전시를 보고나면, 이중섭, 하고 발음할라치면 약간 목이 메이는 사람이 많을 듯 합니다. 이루지 못한 가족 재회의 꿈이 너무 아파서 그렇겠지요. 참, 관람료 있습니다. 성인은 5000원, 학생은 3000원이라네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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