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④ 서부극 부활을 꿈꾸며 기사의 사진
오프닝 크레딧의 실종 외에 ‘요새’ 영화(엄밀하게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아쉬운 점이 하나 더 있다. 서부극의 퇴조다. 어쩌다 가끔씩 서부극이 나오지만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기, 갈증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서부영화는 ‘움직이는 사진’ 시절이던 1903년에 이미 최초로 영화적 서술구조(내러티브)를 갖춘 ‘대열차강도’라는 작품이 나온 이래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로 발전해왔다. ‘할리우드 역사=서부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특히 서부영화는 선인과 악인이 뒤섞인 무법천지 미개척지가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문명화된 신세계로 발전, 정착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물이자 어찌 보면 미국이라는 신생국의 동시대를 그린 현대극으로서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등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거나 여자를 보호한다는 등 나름대로 유럽의 기사도나 신사도를 본뜬 서부의 사나이 신화를 창조하기도 했다.

전성기인 1940~50년대에 존 웨인, 헨리 폰다를 비롯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을 기용해 존 포드, 하워드 혹스, 헨리 해서웨이, 안소니 만 등 명감독들이 만들어낸 고전적인 서부영화는 그러나 전통적 관습(컨벤션)에 매몰돼 지나치게 정형화돼버렸다. 그래서 나온 멸칭이 ‘호스 오페라(horse opera)’다. 가령 용모 단정하고 정의로운 보안관이나 카우보이, 아니면 떠돌이 총잡이가 멋진 총 솜씨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여기에는 종종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포함됐다)을 물리치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얻거나 홀연히 떠나간다는 줄거리. 디테일은 달라도 이런 주제의 변형이 난무하다보니 사람들은 식상할 지경이 됐다.



그러자 196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서부극이 나타났다. 스파게티 웨스턴(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했다)이라는 별명이 붙은 유럽산 서부극이다. 이 장르의 대표선수였던 이탈리아 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는 왜 이탈리아 사람이 서부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고 독일사람도 서부영화의 걸작을 만드는데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하는 법 있느냐고 일갈했다던가. 여기서 그가 말한 독일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3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같은 명화를 만들면서 게리(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 케리가 아니다) 쿠퍼가 주연한 클래식 서부극 ‘하이눈(1952)’을 연출한 프레드 진네만을 가리킨다.

일종의 수정주의라고나 할 스파게티 웨스턴도 그 나름대로의 컨벤션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무법자의 세계’를 극명하게 묘사하기 위해 등 뒤건 어디서건 가릴 것 없이 총질을 해대는 잔인함과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묘사하는 대량살상 등이 종래의 서부극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 게다가 대체로 꾀죄죄하고 더러운 등장인물들의 외양과 선인도 악인도 아니면서 돈만 밝히는 주인공의 캐릭터도 특징이었고.



그러나 이 역시 자체적 컨벤션에 함몰되면서 과장과 매너리즘에 빠져버리자 그에 대한 반성으로 사실주의 서부극이 등장했다. 19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정치적 올바름’ 풍조에 더해 과장이나 미화 등을 제거하고 과거의 서부를 있던 그대로 보자는 움직임이었다.



그 결과 나온 게 아메리카 원주민을 악으로 대하는 대신 동정적으로 다룬 아서 펜의 ‘리틀 빅 맨(1970)’과 랄프 넬슨의 ‘솔저 블루(1970)’라든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조지 로이 힐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 그리고 이 흐름의 정점에 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 등이었다.



그 후 서부극 ‘늑대와 춤을(1990)’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서부극의 매력을 못 잊은 듯 또 다시 감독 주연한 ‘오픈 레인지(2003)’와 존 웨인의 69년작 ‘진정한 용기’를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0)’, 프랑코 네로 주연의 전설적인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1966)’를 퀜틴 타란티노가 흑인판으로 리메이크한 ‘장고(2012)’ 등이 간간이 선보였으나 서부극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지는 못했다. 일부에서는 서부극이 ‘정당한 대결’을 강조하는 등 허구에 가득 찬 장르라고 비판하지만 어차피 영화가 허구 아닌가.



존 웨인이 무법자 링고 키드로 분한 ‘역마차(1939)와 헨리 폰다가 수줍은 명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를 연기한 ’황야의 결투(1946)‘, 꼬마의 애타는 부름을 뒤로 한 채 멀어져가는 서부 최고의 속사(速射) 건맨 ‘셰인(1953)’, ‘내 라이플, 내 조랑말, 그리고 나(My Rifle, My Pony and Me)’를 흥얼거리는 주정뱅이 보안관 딘 마틴의 연기가 멋들어졌던 ‘리오 브라보(1959)’, 양웅(兩雄)의 연기 대결이 눈을 사로잡았던 그레고리 펙, 찰턴 헤스턴의 ‘거대한 서부(1958)’와 버트 랭카스터, 커크 더글러스의 ‘OK목장의 결투(1957)’ 등이 보여주었던 넘치는 시정(詩情)과 즐거움,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김상온 프리랜서·영화라이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