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2. 윤송이 안철수, 그들이 사는 법 기사의 사진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 노력의 산물이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천재 소녀’ ‘미국 MIT대 최연소 공학박사’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던 윤송이. 10여년 전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으로 입성했을 때 인터뷰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당초 인터뷰는 30분만 하기로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가까이 됐다.

동석했던 홍보업계 미녀 3인방 중 한 명은 “윤 상무가 인터뷰하면서 저렇게 많이 얘기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남자 기자들이 인터뷰했을 때는 ‘네’ ‘아니오’ 등의 시큰둥한 단답이었는데 오히려 역으로 기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니 놀랄 수밖에.

그도 그럴 것이 취재를, 홍보를 핑계로 각각 새벽까지 ‘달리다’ 집에서 불과 몇 시간 자고 나온 주부 여기자와 홍보업계 여걸의 평범치 않은 삶에 호기심이 일면서도 기막혀하는 눈치였다.

그녀를 만나고 새삼 깨달은 것은 ‘천재들은 다르게 산다’는 거다.

하루 24시간 1분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탐구하고. 화수분처럼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이 놀라웠다.

천재소녀에서 벤처 CEO로 변신한 윤송이

그녀는 SK텔레콤에서도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일본어를 배운다더니 한 달여만에 일본어 책을 줄줄 읽는 것을 보고 임원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

그녀의 독서량은 입이 벌어진다. 일주일에 다섯권 정도를 읽는다. 바쁜 업무와 잦은 저녁모임에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퇴근길에 수영장을 찾고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그녀는 학창시절에도 공부만 잘한 게 아니었다. 그림, 피아노, 바이올린에서도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학시절 한 한기에 24학점을 듣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7시간씩 강의를 들으면서도 남는 시간에는 그림동아리, 테니스동아리를 했고, 쳄버오케스트라동아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KAIST에 그림동아리를 처음 만든 것도 그녀다.

한때는 화가를 꿈꿀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지만 과학자에 대한 꿈이 더 컸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사준 위인전은 과학자편만 읽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언젠가 하루는 넘어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 피가 마를 새라 집으로 뛰어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고 하니 호기심은 타고났나보다.

동생 윤하얀씨도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분자생물학 학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전공해 '천재자매'로 화제가 됐다.

그녀를 만나고 난 뒤 한동안 메신저 ID는 ‘송이처럼’이었다. 회사 선후배들은 ‘송이버섯이냐’고 놀려댔지만 삶의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그녀를 닮고 싶어서였다고 할까. 가장 부러웠던 것은 포도주든, 맥주든 주종 불문하고 ‘한 모금’이라는 그녀의 주량.

돌이켜보면 그녀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인 2005년 SK텔레콤에서 처음 시작했던 인공지능을 휴대전화에 접목시킨 ‘1㎜ 서비스’는 휴대전화가 개인의 취향에 맞춰 뉴스, 날씨, TV, 영화, 맛집 등을 찾아주는 획기적 시도였다. 아이폰은 2년 뒤 이런 서비스를 내놨다.

‘리니지게임’을 즐긴다고 했던 그녀는 2007년 11월 리니지 개발사인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게임업계의 천재 김 사장은 부인과 자녀 등을 미국에 두고 기러기아빠 생활을 오래하다 별거에 들어가고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같은 회사에 처남까지 근무하던 터여서 이 둘의 결혼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했다.

그녀는 2004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고, 2007년 6월에는 이 둘의 결혼설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해 11월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만 모신 채 조용히 치르고 1년이 지나서야 결혼과 함께 출산소식을 알렸다.

유망한 벤처사업가이긴 하지만 이혼의 상처가 있는 사위를 부모들이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을 터.

당시 이 둘이 결혼하기 전 IT담당 기자들 사이에선 이 둘이 부모님과 모 호텔에서 상견례를 하다 그녀가 울며 뛰쳐나갔다는 목격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녀의 결혼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이리라. 유명 벤처갑부와 결혼하기 위해 3박4일 병실을 지키며 공을 들였다는 여자 아나운서의 속물근성도 아니고, 부와 명예 둘다 거머쥐기 위해 벤처갑부를 선택한 여자 탤런트의 계산속이 아니어서다.

그녀가 최근 엔씨소프트 인사에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이번 인사는 엔씨의 1대 주주인 넥슨과 엔씨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뤄져 엔씨 측이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샌님 학자’에서 정치판 뛰어들었다가 이미지 구긴 안철수

그녀를 인터뷰했던 비슷한 시기에 IT부문을 취재하면서 안철수 의원을 처음 만났다.

안철수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당시에도 의사가운을 내던지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천재이자 보안업계 1위 업체 사장으로 유명세를 타던 중이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으니 점심식사 한번 하자는 자리에 나온 안 사장의 첫 인상은 ‘순수한 학자’였다.

혼탁한 이 세상과는 담 쌓고 살 것 같은 고고함이 느껴졌다.

조근조근한 말투와 조용한 몸짓은 천상 ‘샌님’ 학자였다. 그의 삶 역시 청정했다.

술이나 담배와는 거리가 멀었고 저녁 약속도 많지 않았다. 교수들이나 지인들과의 연구모임 정도가 고작이었다.

윤송이와 안철수, 이 천재 둘의 공통점은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으로 책 속에 빠져살면서 인생의 단 1분1초도 아깝게 살지 않는다는 거였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 사회의 영웅을 잃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고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진흙탕 정치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서다.

대한민국을 구원해줄 ‘세인트 찰스’(聖人 철수)로 떠올랐다가 한 순간에 범인(凡人)으로 추락한 그는 이제 더 이상 청년들의 멘토도, 다음 대선후보로 부상할 것 같지도 않다.

그는 2004년에 펴낸 책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서 “내 개인적인 가치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직과 성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세 가지”라고 했다.

그가 이 세 가지 원칙을 계속 붙들고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교과서에서 밀려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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