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씨의 미술 바구니] 5. 애꾸눈 모나리자의 반란…  변종곤 개인전 기사의 사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것으로, 가슴을 노출시킨 채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애꾸눈을 만들어버렸다. 물감 튜브를 같이 그려 현대미술이 여성 나체 사진을 줄창 그려온 것에 대해 펀치를 날린 것이다. 더페이지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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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작가 변종곤(67)의 개인전을 소개할까합니다. 한마디로 앤틱 수집품의 ‘즐거운 반란’이라고나 할까요. 뉴욕, 파리,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수십 년 모은 거라는데, 이런 게 있나 싶은 희한한 컬렉션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앤틱을 오브제 삼아 다양한 이미지의 페인팅을 입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구문화를 한방 먹이기도 하고, 동서양 문화를 이종교배 시키기도 하며, 성(聖)과 속(俗)을 합치기도 합니다. 위트가 있는 문제제기 방식입니다. 심각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심각한….

화가의 인상도 그렇습니다. 손주보는 나이에 ‘뽀글이 파마’에 검은 부츠 차림이라니. 기인이라기보다는 악동 이미지가 물씬 풍기지요. 하지만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에선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더군요.

이제 작품을 볼까요. 헌 책방, 여행지 등에서 평생 모은 인디언 사진을, 진짜 사진처럼 극사실주의 화법으로 한데 모아 그린 대형 집단 초상화가 눈에 띕니다. 뜬금없이 맨 가운데 인디언이 미국의 관능적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사랑했다는 ‘샤넬 넘버 5’ 향수를 들고 있습니다. 작가는 “보호구역에 갇힌 인디언의 비참한 처지를 보고 과연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미국 정부에 묻고 싶었다”고 합니다.

풍만한 여체를 연상시켜 모으기 시작했다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전시장엔 참 많습니다. 거기에 동양 여성 누드는 물론 신부와 수녀의 키스 장면을 그려 넣었어요. 초창기의 목조 온도계엔 김홍도의 그림에서 따온 듯한 춘화가 야릇합니다. 남녀가 합쳐서 내는 열기에 따라 온도가 달라진다? 뭐 그런 는 얘기겠지요. 위스키 병에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슬쩍 입혔습니다.



서양고전 패러디가 빠질 리 없지요. 뉴욕 할렘가에서 구했다는 석고 피에타상의 예수는 슈퍼맨 옷을 입고 있어요. 불상의 머리를 떼고 백발 서양 할아버지 두상을 앉히기도 했습니다. 현대미술의 단골 패러디 대상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빠지지 않습니다. 모나리자가 가슴을 드러내거나 신용카드를 들고 있는 것도 있네요. 작가의 의도는 곰곰 들여다보면 읽혀진답니다.

전시명은 컬렉션에 대한 답글이라는 의미에서 ‘RE: COLLECTIONS’입니다. 그럴듯하지요..

작가는 할렘가에 버려진 물건들이 고국에서 버려진 자신의 모습을 닮은 듯해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1970년대 대구에서 극사실주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화가였지요. 유신시절, 창작에 대한 규제를 작품 모티프로 즐겨 그렸습니다. 이를테면 대구 앞산 미군 비행장 활주로 풍경 같은 것이지요. 방독면이 논밭에 휘날리는 그림도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환경이 숨 막혔던 그는 1981년 돌연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뉴욕입니다. 동양에서 온 무명의 화가는 생존을 위해 할렘가의 생선가게에서 붓 대신 식칼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를 그는 ‘호주머니에 죽음을 넣고 다니던 시절’이라고 담담히 회상합니다.

어느 날, 가게 한쪽에 걸어둔 작품 ‘할렘가 풍경’을 뉴욕의 리버데일 갤러리 주인이 알아봤습니다. 동양의 변방 한국에서 온 작가는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88년 올림픽 때 백남준, 김창렬 등의 해외 작가와 함께 금의환향했습니다.

뉴욕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를 물었습니다. “생선가게에서 일했던 그 수개월간을 빼고 지금까지 뉴욕에서 그림을 팔아 자식을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대답, 아닌가요?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전시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2월 15일까지 열립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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