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⑤ 리메이크의 길 기사의 사진
영화제작 편수가 늘어나다보니 아이디어의 빈곤이 문제가 되곤 한다. 이를 해결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컴퓨터 그래픽 등 기술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는 그림(만화, 애니메이션)으로나 가능했던 상상의 세계를 실사(實寫)화 하는 게 그 하나고, 작품성이나 흥행 어느 쪽에서건 이미 충분히 검증된 옛 작품의 후속편을 만들거나 리메이크하는 게 또 하나다.

만화의 실사화는 요즘 한창 유행이다. 미국의 양대 만화출판사 마블과 DC코믹스가 1930년대부터 만들어낸 만화 주인공들(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GI 조 등)이 슈퍼 히어로란 이름으로 속속 영화 주인공으로 재탄생 하고 있는가하면 일본제 괴수(고질라)나 로봇(트랜스포머)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고 있다.



또 1편의 뒷이야기(시퀄)나 앞 이야기(프리퀄)를 담아내는 속편은 원작만한 게 없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007 제임스 본드나 핑크 팬더 시리즈 같은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대부’ 2편(1974)이 1편을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흥행성적을 올린 이래 붐을 이뤄 2, 3편은 물론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것은 7편까지 나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1946년에 만들어진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고전 걸작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의 속편이 곧 만들어질 것 같다는 소식. 무려 70년만의 속편이다.



리메이크는 어떤가. 최근에만 해도 반전(反戰)영화의 고전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가 1979년에 이어 또 다시 리메이크될 예정으로 다음달부터 크랭크인 된다고 한다. 서사영화의 대명사격인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1959)’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이색작 ‘새(1963)’도 리메이크되리라고 한다.



하긴 리메이크는 이미 할리우드 초창기부터의 전통이다. 1959년작 ‘벤허’만 해도 1925년에 나온 무성영화의 리메이크였으니까. 이밖에도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제임스 딘의 출세작 ‘에덴의 동쪽’이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미 명장 반열에 오른 스티븐 스필버그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명작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의 리메이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제2의 제임스 딘이 나올지, 재기발랄한 스필버그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사실 원작에 익숙한 ‘올드 팬’들은 리메이크작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원작의 향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원작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적의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 아니라 영화를 감상할 당시의 갖가지 추억까지 배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벤허’가 새로 만들어진다고 할 때 누가 ‘감히’ 찰턴 헤스턴에 필적하는 벤허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리메이크됐을 때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를 재연한 배우들에게 비난이 쏟아졌던 것처럼.

그러다보니 제작자들은 나름대로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원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리메이크작에도 등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역할, 또는 캐미오로. 이를테면 1991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로버트 드 니로, 닉 놀테를 기용해 리메이크한 스릴러 ‘케이프 피어’에는 원작인 J 리 톰슨 감독의 61년판에서 각각 두 사람의 배역을 맡았던 두 주인공 로버트 미첨과 그레고리 펙이 캐미오로 출연해 이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앞으로도 리메이크할 작품들은 무궁무진한 만큼 과연 어떤 영화들이 리메이크될지, 새로 리메이크될 영화에는 어떤 배우들이 원작에 나왔던 멋진 배우들의 역할을 맡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러나 리메이크영화가 이처럼 이런 저런 재미를 주는 것은 그것이 리메이크라는 것을 분명히 알 때만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영화가 리메이크인지, 그렇다면 원작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야 ‘새 영화’인줄 알고 더 많은 관객이 찾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령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하고 조지 클루니 등 초호화 출연진이 나왔던 1991년작 ‘오션스 일레븐’이, 1960년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하고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이른바 ‘랫 팩(rat pack)'을 비롯한 당대의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동명의 영화 리메이크작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랫 팩은 당시 시나트라가 이끌던 엔터테이너들을 망라해 일컫는 별칭이었는데 굳이 우리식으로 하자면 ’시나트라 군단‘이라고나 할 ’스타 동아리‘였다. 하물며 1999년 멜 깁슨이 주연한 브라이언 헬겔랜드 감독의 ’페이백‘이 존 부어맨 감독의 1967년작 ’포인트 블랭크‘의 리메이크라는 건? 멜 깁슨보다 윗길의 마초 배우 리 마빈이 나온 포인트 블랭크는 평자에 따라서는 1960년대 대표작 10편에 꼽히기도 하는 명작인데도 수입업자 또는 흥행업자들이 왜 리메이크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요즘엔 유선TV를 포함해 영화채널도 많던데 원작과 리메이크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친절한 프로그램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김상온 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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