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3. 회장님의 로맨스인가, 바람기인가 기사의 사진
그래픽=전진이 기자 ahbez@kmib.co.kr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시인 박목월은 피난지인 대구에서 예쁘고 호리호리한 H양을 팬으로 만났다. 휴전 후 서울에서 이 여대생을 다시 만난 박목월은 사랑에 빠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자리도, 가정도, 명예도 모두 내던지고 연인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40대의 박목월에게는 부인이 있었다.

얼마 뒤 시간이 지나고 박목월의 아내 유익순은 그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남편을 찾아나섰다. 막상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되자 아내는 “힘들고 어렵지 않느냐”며 돈 봉투와 추운 겨울을 지내라고 두 사람의 겨울 옷을 내밀고 서울로 사라졌다.

박목월과 그 연인은 이 모습에 감동해 그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했다.

박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사랑하는 연인에게 시(詩)를 지어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이 가사를 쓰고, 김성태가 곡을 만든 ‘이별의 노래’다.

그래도 막상 발길을 떼지 못하던 차에 부산에서 연인의 아버지가 찾아와 딸을 설득했다.

사흘을 버티다 결국 이별을 선택한 박목월의 연인은 부친 손에 이끌려 제주항으로 떠나고, 망부(忘婦)를 태운 꽃상여를 뒤따르듯 박목월이 뒤따랐다.

박목월의 그녀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뱃전에서 고개만 떨구었다.

두 연인의 이별 모습을 박목월이 제주에서 문학활동을 하며 알게 된 당시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인 양중해가 보고 그날 저녁 시를 지었다.

시인 양중해는 이 시를 같은 학교 음악교사인 변훈에게 주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로 시작되는 ‘떠나가는 배’다.

노랫말에는 시인과 여대생의 애달픈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절절히 묻어난다. 하지만 부인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을까.

짝 있는 기혼자의 로맨스는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불륜일뿐.

박목월의 부인 유익순은 ‘밤에 쓴 인생론’을 통해 시인의 아내로서 시련을 겪었지만 신앙의 힘과 남편에 대한 신뢰로 이를 극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물림되는 재벌과 연예인들의 연애사

박목월의 부인 못지않게 속앓이를 하는 재벌 회장 사모님들도 적지 않다.

여성편력이 심한 것으로 소문난 A회장. 연예인들이 ‘딴따라’라고 불리며 배곯던 시절, 재력을 무기로 가수, 탤런트, 카페 여주인 등을 닥치지 않고 섭렵했다. 이들에게는 ‘하룻밤’ 대가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사주기도 하고, 수억원을 건넸다는 등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이 회장이 곳곳에 뿌린 ‘씨’를 거두면 부대 하나를 만들고도 남을 거라는 말들이 회사 내에서 회자되기도 했을 정도다.

A회장이 작고했을 때 실제로 ‘숨겨진 여인’이 두 딸을 데리고 나타나 친자확인소송에 재산분할 소송을 내기도 했다.

열다섯 살에 시집 와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과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며 평생을 소탈하게 살았던 이 회장의 부인. 집에서 통바지를 즐겨 입어 손님이 오면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 ‘주인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A회장도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인 것을 어쩌랴.

자식을 땅에 묻은 참척의 아픔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20년 가까이 병석에 누워있다 몇 년 전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연예인이나 아나운서는 재벌가와 유독 연을 맺은 경우가 많다.

1970년대 가수와 결혼했다 12년 만에 파경을 맞은 B회장. 이듬해 무려 27살이나 어린 아나운서와 결혼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B회장의 바람기 때문에 이 둘의 결혼도 지속되진 못했다.

이 아나운서는 이혼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임신 6개월 상태로 결혼 소식을 들려줬다. 재혼상대는 대학 2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났던 남자. 돌고 돌아 20년 만에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이 둘의 스토리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 ‘현정’이란 이름은 재벌가와 인연이 깊은가보다.

과거에는 재벌 회장이나 정치인들과 여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채홍사도 있었다. 믿거나말거나 탤런트계의 대모 C씨가 ‘마담뚜’로 활약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 들은 고교 동창의 전언은 충격적이다.

재력가 집안의 사촌오빠가 외무고시에 합격했는데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 가보라고 했단다. 호텔방문을 열어보니 신인 여배우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는데 나중에 보니 유명해졌더란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10여년 전에나 있는 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며칠 전 미스코리아 출신 30대 여성이 대기업 사장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빌미로 30억원을 요구했다가 검찰에 구속됐다는 뉴스가 나오니 하는 얘기다.

이 여성은 40대 남자친구와 함께 오피스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뒤 돈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가 출신 대기업 사장은 4000만원을 주고 무마하려다 협박이 계속되자 지난해 12월 검찰에 고소했다고 한다.

‘D회장이 뒤를 봐주던 탤런트는 둘의 관계가 들통날 위기에 놓이자 몇 번 만나던 아나운서와 결혼했다’ ‘E회장은 유부녀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이혼시키고 결혼했다’

아직도 이런 믿거나말거나 식의 재벌 회장들의 사생활이 찌라시에 오르내리고, 아랫도리 관리 못하는 남자들 때문에 ‘성매매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못 벗어나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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