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문화비평] 대하드라마 KBS ‘징비록’, 막장드라마에 갇힌 시청자에게 청량제 될까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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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과 <국제시장>이 던진 ‘역사 배우기’ 열풍

충무로는 시끌벅적하다. 이순신을 다룬 영화 ‘명량’은 3일 현재 누적관객 176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국제시장>은 여전히 흥행돌풍이 거세다. 복고의 열풍은 시대극으로 확장되고 있다. 영화 <강남1970>에다 <허삼관> <쎄시봉>까지 70~80년대로 돌아간 충무로는 요즘 뜨겁다.

반면에 여의도는 조용하다. 대하드라마는 물론 시대극이나 사극 모두 맥을 못추고 있다. 지상파 3사중 그래도 꾸준히 사극을 제작해온 KBS도 여태껏 힘을 못쓰고 있다. 지난해 <정도전>으로 대박을 터트린 KBS였지만 후속작은 이렇다 할게 없다. 멜로물에 비해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사극은 요즘 상황에서 웬만한 방송사는 엄두조차 내기 힘들 것이다.

KBS 2TV는 최근 사극을 선보였다. 24부작 <왕의 얼굴>(연출 윤성식 차영훈 극본 이향희 윤수정)이다. 그런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을 앞두고 영화 <관상>을 모방했다며 충무로와 여의도가 입씨름을 벌였지만 그런 노이즈마케팅도 별반 효과가 없었나 보다.

광해역의 서인국은 독특한 캐릭터로 초기 관심을 끌었다. ‘슈퍼스타K1'의 우승자에다 KBS 2TV 드라마 <사랑비>와 tvN <응답하라 1997> 출연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광해 연인으로 캐스팅된 가희 역의 조윤희 역시 2010년 MBC 여자신인상을 받았다. 극중 청순이미지가 단연 돋보였다. 선조 역을 맡은 개성파 배우인 이성재는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종영을 앞둔 <왕의 얼굴>은 이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세간의 화제가 되지 못할까. 시청자들에겐 연산군과 더불어 ‘광해군’은 ‘폭군’이란 역사적 등식이 각인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란 국난을 맞은 선조 당시 영웅호걸이 탄생했다. 이순신 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 유성룡 선생 등 손꼽기조차 어렵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지금 난세일까? 이 영웅들을 그린 영화 드라마들이 경쟁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TV사극내 픽션과 논픽션 충돌-시청자들에 ‘인지부조화’만 유발

<왕의 얼굴>은 시청자들에게 ‘인지부조화’현상을 유발한다. ‘백성을 위한 왕’을 추구하는 권력자 광해였지만 가희를 향한 일편단심은 그야말로 여성층을 겨냥한 ‘총알설정’이었다. 그게 적중하지 못했다.

더구나 영화 <명량>이 추구한 사실주의와는 더욱 충돌했다. <왕의 얼굴>은 명량에서 드러난 이순신과 선조의 캐릭터와 맞부딪힌다. 시청자들의 선입견은 예상보다 강하다. 역사적 사실(史實)이 아닌 만큼 픽션에 기반한 로맨스판타지의 설정이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도치 역 신성록의 강한 인상과 열연이 오히려 주연 광해와 가희에 대한 시청자들의 집중을 분산시키지 않았나 싶다. <왕의 얼굴>은 제작기법이나 시나리오 전개에서 그다지 흠잡을 것은 없다.

두 번째 tvN의 <삼총사>(연출 김병수 극본 송재정)도 눈여겨볼만했다. 콘텐츠파워를 앞세운 tvN의 사극이라는 점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8월 첫방송을 시작해 11월 12부작으로 종영했다. <왔다! 장보리>등 지상파의 멜로성 주말드라마에 밀린 탓인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이돌 정용화(박달향 역)를 비롯해 이진욱(소현세자 역), 양동근(허승포 역) 등이 열연하는 동안 사극형식의 로맨스코미디라는 느낌이 강하다. 20~30대층에도 어필한 만큼 로맨스와 코미디가 잘 버무려져 있다. 사랑과 배신, 음모와 복수, 출생의 비밀 등 막장의 문법에 식상할대로 식상한 시청자들의 ‘반사적 시청’을 기대해볼만 했으나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사극아닌, 사극같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쏟아져

지난 1월19일 시작한 MBC의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연출 윤지훈 극본 권인찬 김선미)는 순항중이다. 지난 3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9.4%였다. 6회분에서 10%대 육박한 만큼 회를 거듭할수록 흥행의 여력은 충분해보인다. 하지만 신율 역의 오연서는 <왔다! 장보리>의 이미지가 아직 떨 빠진 탓인지 몰입을 어렵게 한다. 사극으로 보기엔 오락성이 짙다.

이 드라마 역시 로맨스판타지다. 사극을 차용했을 뿐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를 벗어나지 않는다. 향후 전개를 봐야하겠지만 2014년 SBS의 <별에서 온 그대>나 역시 2003년 SBS <천년지애>와 포맷이 다를 바 없다. 지끔껏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제대로 먹혀들면 대박의 소지는 충분하다. 고려시대 저주받은 왕소(장혁 분)와 공주 신율의 로맨스가 여성시청자들에게 어떤 판타지로 새겨질 지가 최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오는 14일 KBS 1TV가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을 선보인다. 대하드라마 <징비록>(연출 김상휘 극본 정형수)은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의 저서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최악의 국난을 대비하지 못한 통한을 바탕으로 전후 조선의 국가위기관리나 국정철학 등을 집대성하여 후세를 경계한 고전중의 고전이다.

제작진은 유성룡을 국난극복을 위한 ‘혁신의 리더’로 설정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김상중이 류성룡 역을 맡는다. 선조 역을 맡은 김태우의 날선 대립구도에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윤두수 역의 임동진 연기가 기대를 모은다. 더욱이 <다모>와 <주몽>, <계백>을 집필한 정형수 작가가 쓰는 만큼 간만에 정통 대하드라마를 본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어느 역사가는 말했다. 대하드라마는 과거에 대한 사실성을 추구함으로써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제공한다.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적절한 상황비유는 충분히 공감을 줄 수 있다.

주말 막장드라마에 갇힌 시청자에 청량제 되길

<징비록>은 지난해 정통사극의 돌풍을 일으킨 KBS 1TV <정도전>의 야심찬 후속작이다. <정도전>에서 시청자의 가슴에 꽂히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더 TV에 기대고 싶어한다. 사극 부재의 시대에 <용의 눈물>이나 <주몽>을 되돌려보는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재미없고 힘들기만 하다는 요즘, <징비록>이 <정도전>을 넘어서 주말 청량제가 되길 바란다. 주말마다 가슴뭉클한 감동과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는 논픽션 KBS 대하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면 좋겠다. 주말마다 막장문법에다 사랑타령 일변도의 드라마를 ‘습관적으로 강제시청’해야만 하는 시청자들에 모처럼 감동과 강한 여운을 남겨주길 기대한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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