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악화된 우울증…가혹행위 정황 없어도 국가 배상 책임 기사의 사진
별다른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군대에서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했다면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윤일병 사건’ 등 각종 군내 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법원이 병사에 대한 국가의 관리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노모씨는 23세였던 2010년 입대해 국군기무사령관실 당번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앞서 2003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입대 전 신체검사와 육군훈련소 검사에서 모두 ‘복무적합’ 판정을 받았다. 훈련소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자대 배치 후 우울증이 악화됐다. 그는 당번병으로 배치된 바로 다음날 기무사 사령관 책상에 컵을 떨어뜨려 책상 유리를 깼다. 이후 같은 실수를 할까봐 노심초사했다. 사무실 전등을 끄지 않는 등 사소한 실수도 했다. 선임병이 크게 야단치거나 벌을 주지는 않았지만 노씨의 증세는 점점 악화됐다. 담배를 피우다 갑자기 쓰러져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결국 자대배치 한 달 만에 국군수도병원 진료를 받았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노씨는 보직 변경을 원했지만 부대 간부는 “업무를 잘 하고 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보라”며 “한 달 정도 후에도 못 견디면 바꿔주겠다”고 답했다. 노씨는 면담 일주일 만에 “부모님 사랑해요”라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했다. 노씨의 가족들은 “부대에서 병사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정부는 “노씨의 근무에 가혹행위나 직권남용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부장판사 전현정)는 노씨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1억2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군대 내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며 “소속 부대가 보직 변경 등을 포함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대 간부들이 지속적으로 면담한 사정 등을 고려해 국가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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