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문화비평] 거센 복고주의는 변화의 문화에너지 기사의 사진
<토토가>서 촉발된 복고열풍이 ‘복고이즘’ 되다

복고 열풍이 심상치 않다. 일과성 복고주의로 결코 그치지 않을 기세다. 2015년 한국사회 구석구석에 복고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2~3년 전부터 고개를 든 복고주의 열풍은 본격적으로 우리의 일상에 휘몰아치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부터 tvN의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시리즈에서 증폭시킨 복고열풍은 이제 ‘복고이즘’이 되어 사회전반을 뒤엎고 있다. 2년 전 가왕(歌王) 조용필의 <바운스>부터 80년대 가수들의 복고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더니 최근 전영록 김창완 등 70~80년대 가수들마저 잇따라 데뷔를 선언하고 있다.

문화론자들은 2015년 대중문화 대변혁의 서막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복고 트렌드가 사회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사회학적 진단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50~60대 중장년층의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의 해묵은 고정관념마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복고주의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2010을 전후해 잠복했다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였다. 그러다 지난해말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가 불을 당겼다. 199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설정으로 당시 히트한 대중음악 가수들을 불러 모은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90학번부터 외환위기 직전인 96학번 대학생들에겐 마지막 ‘참 좋은 시절’이었다.

<무한도전> 김태호 PD 말대로다. ‘그때가 좋았는데. 그 시절로 한번 돌아가 신나게 놀아볼까’라는 단순한 복고감성이 이렇게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 마치 질식할 듯이 숨이 차오른 순간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원한 탄산수 같은 청량함 그런 것이 아닐까.


20대~60대 모두의 감성 자극한 복고주의, ‘잃어버린 자아’ 되찾기


그런데 토토가의 복고바람이 90년대에서 80년대로 흘러가더니 이제 1970년대로 넘어갔다. 심지어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갔다. 충무로에서는 1970~198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영화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통기타 음악의 탄생을 다룬 <쎄시봉>과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한 <강남 1970>이 대표적이다.

지금 중장년에서 복고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그런 만큼 복고주의는 갈수록 타오를 수 있는 내연성이 강한 문화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20~30대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자아를 억눌렀던 50~60대도 더 이상 이전의 중장년과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다. 부모들이 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도 부양받지도 않겠다’는 ‘독립적인 자아’로 중무장하고 나섰다. 50~60대는 더 이상 ‘꼰대’로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단지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동안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소신을 억누르고 ‘꼰대’라는 비아냥도 감수했을 뿐이다.

이제는 자식만 키우면 노후가 보장되던 시대가 아니다. 40-50대는 자식이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직장 일선에서 내몰릴까 불안하다. 대학생인 20대부터 결혼한 30대까지 어느 편히 사는 자식도 없다. 이젠 ‘너희들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런다.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안정이다’라는 정치적 논리는 되돌아보니 모순덩어리임을 알았다. 그러니 괜스레 꼰대소리나 듣지 말자는 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강해졌다. 50대 중년은 ‘이제 내 인생을 찾아야 겠다’고 다짐하는 요즘 세태다.


복고주의 문화추동력은 강력, 결코 일과성 사회현상은 아닌 듯


20대 젊은이들 역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은 취업이 인생 그 자체다. 대학만 들어가기만 하면 ‘지식인’이란 특권을 누리면서 ‘민주화’를 외쳤던 부모세대에 이내 고개를 돌린다. 수없는 스펙을 쌓아도, 죽기살기로 공부하고 노력해도 ‘성공의 사다리’는 이미 우리사회에서 사라지고 없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죽을 때까지 루저라고 느낀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이미 KBS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 뿐이다. 최고 명문학과를 나온 엘리트도 이젠 밥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를 잘 만나지 않는 한 자신들의 가난은 대물림되는 세상이라 느낀다.

직장 다니는 30대는 집사기는커녕 전세난에 세를 얻기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아프니까 청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인생명언이나 되는 양 되풀이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요즘 매스컴마다 비정규직 ‘장그래’와 ‘노후 없는 퇴직’을 떠들어댄다. ‘반퇴세대’에서 심지어 ‘신중년’이란 그럴싸한 조어까지 난무한다. 20대나 50대 모두 미래가 불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는 젊은층이나 중장년층이나 잠시라도 즐겁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픈 충동을 수시 느낀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그곳은 배고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 미래가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시공간으로 기억한다.


현실탈출의 감상적 복고는 그만, 미래를 여는 에너지로 승화해야


이제 50대 부모가 20대 자식들과 청바지를 입는다.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70~90년대 추억의 공간으로 함께 시간여행을 떠난다. 20대는 30~40대 누나와 형들이 추억하는 1990년대로 간다. 가수 이정현의 음악과 판타지에 놀라고, 터보의 파워풀한 댄스에 경탄한다. 지금 어느 아이돌에 못지 않은 지누션의 열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요즘엔 ‘트윈폴리오’ 윤형주와 송창식의 <쎄시봉>에 한번 더 놀라고 있다.

이렇게 20~50대 연령층까지 부모와 자녀 사이 문화적 소통공간은 갈수록 팽창해가고 있다. 2015년 한국사회는 이념, 세대, 빈부, 학력 등 모든 인생의 격차를 넘어 ‘SNS식 문화 소통구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세대간 공감대의 소통구조가 문화현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아에 눈을 뜬 50대는 1970년대 통기타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문화운동’의 주체들이다. 시위때마다 불렀던 김민기와 양희은의 익숙한 노래와 탈춤놀이를 사회운동의 도구로 활용했던 주역들이다.

이제 그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3포 세대’의 부모들이 되었다. 더 이상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민망한데 복고는 자꾸 시공간을 과거 70~80년대로 되돌려놓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지상파TV마다 복고의 상업화에 열을 올린다. 가뜩이나 떨어진 시청률과 TV광고 수주를 만회할 좋은 아이템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대중매체가 부추기는 감상적 복고주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종의 판타지효과의 부작용이다. TV나 영화의 가상세계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한 환각효과는 개인이나 사회에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문화대변혁의 진원지인 복고의 화산에서 춤춘다


‘우리는 화산 위에서 춤춘다’ (Nous dansons un volcano)

나폴레옹이 유배된 직후인 1830년대 프랑스의 작가였던 아쉴르 드 살반디 (Achille de Salvandy, 1795-1859)가 7월 프랑스 대혁명 직전 파리근교에서 열린 귀족들의 무도회에서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혁명 전야의 고요함속에서도 귀족들이 매일 밤 무도회를 즐기는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복고는 우리 사회 전반에 누적적으로 내재된 정치사회적 관계틀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문화감성의 공유는 폭발적인 사회적 힘을 갖고 있다.

20대부터 50~60대 중장년까지 한국사회의 복고문화에 공감할 때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의미의 공유’(Sharing of Meanings)가 일어날 수 있다. 문화론자들은 ‘의미의 공유’가 곧 사회변화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복고열풍은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문화대변혁의 화산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를 그 화산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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