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9일(현지시간)부터 앨라배마주(州)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그러나 로이 무어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이 연방대법원의 결정과 달리 동성결혼을 허가하는 주 법원 검인(檢印) 판사들에게 허가서 발급 금지를 지시하고, 일선 판사마다 제각각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연방대법원은 이날부터 동성결혼을 허용하라는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이를 번복해달라며 루서 스트레인지 앨라배마주 법무장관이 제기한 소송을 대법관 찬성 7명, 반대 2명의 결정으로 각하했다. 앤토닌 스칼리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반대표를 던졌다.

보수 성향이 강한 앨라배마주에서도 동성 간 결혼이 가능해짐으로써 미국 50개주 가운데 37개 주, 그리고 워싱턴DC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하지만, USA투데이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무어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수 시간 전인 8일 밤, 휘하 판사들에게 동성결혼을 금한 주 헌법 등을 들어 결혼 허가서를 발급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무어 주 대법원장은 “연방대법원뿐만 아니라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동성결혼을 금지한 앨라배마주 헌법의 합헌성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연방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주 법원 청사 앞에 세운 십계명 비석을 그대로 뒀다가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 보수 개신교 신자로, 동성결혼을 극력 반대한다.

연방지법과 연방대법원의 명령에 맞선 무어 주 대법원장의 돌출 행동 탓에 지역에 따라 이날 동성 커플간에 희비가 교차했다.

앨라배마주 버밍엄에 있는 제퍼슨 카운티 법원의 앨런 킹 판사는 연방대법원의 명령에 발맞춰 두 명의 여성 동성 커플의 결혼을 승인했다.

몽고메리 카운티의 스티븐 리드 판사는 “주 대법원장의 명령은 법률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으로, 나는 판사로서 선서한 대로 행동했다”며 주 대법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인권단체인 남부빈민법센터(SPLC) 몽고메리 지부는 앨라배마 주 67개 카운티 중 주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최소 8개 카운티에서 동성결혼을 허가했다고 집계했다. 이와 달리 6개 이상 카운티 판사들은 동성결혼을 용인하지 않는 무어 주 대법원장의 지시를 철석같이 따랐다.

오터가 카운티의 앨 부스 판사는 동성결혼 신청서는 받겠지만 이를 허가하지 않겠다면서 “주 대법원장은 승인하지 말라고 하고, 연방법원은 승인하라는데 대체 어떤 법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후의 보루인 판사마저 흔들리는 이유는 동성 결혼을 미국 전체에 적용할 단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2013년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이성 간 결합'이라고 규정해 동성 결합 커플이 연방정부에서 부부에 제공하는 혜택들을 받지 못하도록 한 1996년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동성 결혼 인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혼란을 부채질했다.

불만이 폭주하자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16일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각 주에서 동성인 사람들의 결혼을 인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주 정부가 다른 주에서 인정받은 결혼을 함께 인정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겠다”며 이 사안의 심의를 결정하고 6월말 최종 결론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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