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6. JP와 재벌 회장님의 애끓는 사부곡(思婦曲) 기사의 사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2일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자 장녀인 예리씨가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구성찬 기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애잔한 사부곡(思婦曲)이 울림을 주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아내의 영정 앞에서 “내가 이렇다 할 보답도 못했는데 나를 남겨놓고 먼저 세상을 뜨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박영옥 여사가 숨을 거둘 때까지 손을 잡고 있다가 마지막 입맞춤으로 박 여사와 작별했다. 64년 전 결혼식 때 아내에게 선물한 금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떠나는 아내의 목에 걸어주고 조문객들에게는 “마누라하고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 국립묘지 선택은 안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총리는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永世伴侶)와 함께 이 곳에 누웠노라”로 끝나는 묘비명을 직접 지어놓기도 했다고.

결혼할 때 김 전 총리는 프러포즈로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에게(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라는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구절을 건넸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첫 약속을 한결같이 지키며 박 여사와 잉꼬부부로 64년을 해로했다. 2011년 회혼 축하자리에선 “난 평생 이 사람밖에 몰랐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9월 박 여사가 요도암으로 입원한 뒤 김 전 총리는 매일 저녁 병실을 찾아 간병했다고 한다.

빈소를 찾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모님은 건강하신 줄 알았습니다”라고 하자, 김 전 총리는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했는데 열어보니까 (암) 말기였고 반년 이상 지탱을 했지.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는데”라고 했다.

“오래 사셔야 합니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위로에는 “6개월 전 아래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는데 진찰하니까 암 말기가 나왔다. 최선을 다하자, 치료해보자 했는데 그제 떠나보냈다”며 “내가 먼저 가길 원했는데. 마누라가 소중한 건 생전에도 가끔 느끼곤 했지만 막상 없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등잔밑이 어두웠던 재벌 회장님

JP의 눈물을 보면서 몇 년 전 반려자를 떠나보낸 어느 재벌 회장님이 떠올랐다.

유교적 가풍 탓인지 그 집안 며느리들은 그림자 내조를 할 뿐 대외에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추석이 막 지난 어느 가을 재벌 회장의 최측근 고위 임원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건강검진을 안 받았다네, 글쎄”

이 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부러울 것 없이 세상 부를 다 가진 재벌가 사모님이 뒤늦게 병원을 찾았더니 암 진단을 받았단다. 그래서 온 가족이 추석 연휴에 전세기를 대절해 미국으로 수술하기 위해 날아갔다는 것이다.

십수년을 알고 지낸 이 임원은 밤 10시가 넘어 헤어지면서 “내일 낮에 보도자료가 나갈 지도 모르겠다”고 한 마디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적인 자리에서의 대화였지만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회사 근처에 있는 후배를 찾았다. 회사까지 달려가자니 신문 마감시간을 대지 못할 것 같았다.

타사 기자와 셋이 밥을 먹었는데 그 기자를 물 먹일(?) 수가 없어 “나는 기사 쓸테니 당신도 기사 쓰라”고 하고, 이 소식을 알려준 임원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보도자료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별세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그룹 임원들을 찾아 전화기를 돌렸지만 회장 가족이 미국에 간 사실조차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장 사모님의 병환은 몇몇 고위층 임원들만 알고 있던 터였다.

모든 기사가 그렇지만 부음기사는 기자들에겐 물 먹어선 안 되는 중요한 기사다. 1990년대 초 ‘사쓰마와리’ 시절 당시 신문사 사장은 부음기사 하나라도 놓치면 호통을 칠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 경험도 재벌 회장 부인의 죽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말년을 휠체어에 의지해 계동 사옥 단골 이발관을 들르곤 했던 정 회장은 자리에 몸져누운 뒤 몇 차례 사망설이 돌았다. 그날 저녁도 사망 소문이 돌았고, 현대 측 임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니 아닐 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 임원은 “노인네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넌지시 암시를 주었다.

현대그룹은 몇 시간 뒤 정 회장의 별세를 공식 발표했다.

재벌 회장 사모님 소식을 들으면서 이 때 기억이 떠올랐지만 만에 하나 죽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 회장 부인 위독’으로 기사를 실었다. 그날 아침 두 신문에 기사가 나간 뒤 이 그룹은 반나절도 안 돼 회장 부인이 별세했다는 자료를 냈다.

이 회장은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인을 만나 열애 끝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뚝뚝한 이 회장은 살았을 적 다정다감하게 애정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수더분하게 맏며느리 역할을 해준 부인에게 못내 미안했나보다.

호사가들은 신사옥 층수가 부인의 기일과 같다며 재벌 회장의 절절한 사부곡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이명희 선임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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