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⑧ 남자 배우들의 전설 기사의 사진
험프리 보가트
지난번 존 웨인 이야기를 쓰느라 자료를 찾던 중 흥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존 웨인이 미국영화연구소(AFI, American Film Institute) 선정 미국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은막의 전설 50인(50 Greatest Screen Legends)’ 가운데 남자 13위에 랭크됐다는 사실이었다. 이 리스트는 AFI가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1999년에 만든 것으로 남자와 여자배우 각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선정 대상이 1950년 이전에 데뷔했거나, 이후에 데뷔한 경우라면 사망한 이들로만 국한돼 있어 ‘요새 배우’들은 한사람도 끼어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남자의 경우 커크 더글러스와 시드니 포이티어, 여자는 소피아 로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그리운 이름들이다.

영화와 관련된 각종 리스트는 여기 저기 난무하지만 권위 있는 AFI가 만든 것인 만큼 일별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남자 25위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윌리엄 홀든. 부드럽고 호감 가는 외모와 멋진 체격으로 ‘모정’ ‘피크닉(이상 1955)’ 같은 로맨스부터 ‘콰이강의 다리(1957)’ ‘와일드 번치(1968)’ 같은 액션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별명 ‘골든 보이’.

24. 에드워드 G 로빈슨. 할리우드 초기 1930년대 갱스터 역할로 성가를 높였으나 나중에는 조연 전문으로 활동했다.

23. 로버트 미첨. 졸린 듯 반쯤 감긴 눈이 특징으로 주로 1940~50년대 필름 누아르와 서부극에서 활약한 터프가이. 악역도 기막히게 해냈다.

22.시드니 포이티어. 1964년에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21. 버스터 키튼. 무성영화시절 찰리 채플린과 쌍벽을 이룬 코미디 배우. 슬랩스틱의 천재. 무표정이 특징이어서 ‘위대한 바위 얼굴’이라고 불렸다.

20. 마르크스 형제. 그루초 하포 제포 치코 등 4형제로 이뤄진 코미디그룹.

19. 버트 랭카스터. 사나이중의 사나이. 서커스단 출신으로 액션 전문이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도 출중했다.

18. 제임스 딘. 두말이 필요 없는 전설. 24살에 사망한 10대의 우상. 단 3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 스타가 됐다.

17. 커크 더글러스. 옴폭 파인 턱의 보조개가 트레이드마크인 쾌남.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

16. 오슨 웰스. 영화의 천재, 신동으로 불렸다. 그가 연출 주연한 ‘시민 케인(1941)’은 걸작영화를 꼽는 모든 리스트에 항상 포함되며 그것도 거의 늘 1위에 등재되는 작품이다.

15.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와 함께 할리우드 뮤지컬의 황금기를 만든 댄서 겸 가수 겸 배우. 비를 맞으며 독무(獨舞)를 추는 장면이 일품인 ‘사랑은 비를 타고(1952)’는 뮤지컬 중의 뮤지컬로 꼽힌다.

14. 로렌스 올리비에. 영국배우이면서도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다. 정통 세익스피어극 출신답게 세익스피어극을 영화화한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13. 존 웨인. 미국 문화와 가치의 아이콘. 서부극의 대부. 그의 독특한 걷는 모습과 말투, 스타일은 1925년까지 생존한 현실의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2. 그레고리 펙. 미남의 대명사. 신사 이미지와 품위, 지성적 분위기를 갖춘 최고급 스타.

11. 게리 쿠퍼. 유성영화 초기부터 활약한 멋쟁이. 존 웨인을 제외하고 ‘서부의 사나이’로 그만한 배우가 없었다.

10.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시대를 주름잡은 ‘페이소스 가득한 코미디’의 제왕. 그가 창조한 ‘떠돌이 찰리’는 영화사상 불후의 캐릭터로 꼽힌다.

9. 스펜서 트레이시. 젊은 시절에는 터프가이의 대표격이었으나 나중에는 전형적인 부성상(Father Figure)을 많이 연기했다.

8.제임스 캐그니. 키는 작지만 암팡진 캐릭터로 초창기 갱스터부터 강인한 인물들을 잘 소화해냈다.

7. 클라크 게이블. 잘 생겼으면서도 어딘가 느끼한 ‘나쁜 사나아’ 이미지를 풍기는 상 남자 중 상 남자. 할리우드의 제왕. 가느다란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6. 헨리 폰다.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도 믿음직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제인 폰다와 피터 폰다의 아버지.

5. 프레드 아스테어. 위대한 댄서. 할리우드 뮤지컬 황금기를 이끌었다. 진저 로저스와의 댄싱 콤비가 유명하다.

4.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보다 한발 앞서 할리우드의 반항아로 위치를 구축했다. 카리스마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부하는 등 ‘말썽꾼’ 이미지도 강하다.

3. 제임스 스튜어트. 순수하고 진지하고 친절한, 미국인의 전형. 장군(준장)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2. 케리 그랜트. 영국 출신으로 부드럽고 잘생긴 외모와 중후하고 신사적인 멋스러움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관한 한 적수가 없었다.

그리고 1위는 험프리 보가트에게 돌아갔다. ‘카사블랑카(1942)’의 카페 주인 릭이나 ‘말타의 매(1941)’의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로 기억되는 터프가이의 대표선수 격이지만 초기에는 주로 악역 갱스터 전문이었다. 그런 그가 ‘전설 중의 전설’로 꼽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카사블랑카’의 영향이 크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터프가이이면서 로맨스에 가슴 아파하는 진짜 사나이의 이미지를 굳혔다. ‘옛날 스타’들만 나오는 바람에 '전시대를 통털은(all time)‘ 게 아니라 아쉽지만 ‘요즘 스타’들도 포함시킨 리스트를 각자 나름대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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