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문화비평] ‘먹고 산다’는 의미의 재해석… ‘삼시세끼’에 내재된 문화코드 기사의 사진
어촌의 하루는 지루하고 따분하다. 도시에 치열한 편안함이 있다면 어촌에는 불편한 한가로움이 있다. 자연스레 밥 한끼 해먹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 줄 뒤늦게 깨닫는다. ‘먹고 살려고’ 뛰다보니 모두들 끼니가 되어도 ‘살려고’ 먹는다. 이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는걸까’

tvN 리얼 다큐 ‘삼시세끼’(연출 나영석·신효정)는 도시인의 이러한 근본적 의문을 던졌다.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인데도 동(動)적이라기보다 정(靜)적이다. 그래서 도시적 관념에 묻혀 살아온 ‘나’를 잠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연히 이 프로그램은 중독성이 농후하다. 시청자들도 묘한 중독성에 몰입된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없을까’

삼시세끼는 케이블TV 시청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설 연휴였던 지난 20일 5회분 시청률은 무려 13.38%였다. 순간시청률은 14.2%까지 올랐다. 지상파 주말 예능도 10% 안팎을 맴도는 요즘 어마어마한 대기록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것도, 반전의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촌을 찾아간 출연자의 하루일상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냈을 뿐이다. 심심한 어촌의 하루가 도대체 어떻길래 시청자들이 이토록 열광할까.

느림의 미학, 틀박힘의 반전이 볼거리 제공

먼저 삼시세끼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하루 세끼는커녕 한끼도 편히 먹기 어려운 게 요즘 각박한 도시인들의 일상이다. ‘빨리빨리’ 법칙만이 적용된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잘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다. 다들 ‘먹고 살려고’ 하루 종일 뛰어보지만 삶은 갈수록 팍팍하기만 하다. 20대부터 중년까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갈수록 사라진다. 그래서 삼시세끼에는 하루 세 번의 끼니가 오랜만에 내 자신을 되찾게 만드는 모티브로 작용했다. 억만장자도, 가난한 사람도 하루 세끼 먹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왜 끼니마저 거른 채 바쁘게 살까 하는 자기성찰이 시청자들의 가슴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느림’은 당연히 휴식과 힐링을 수반한다. 이 프로그램은 ‘어촌에 가서 나도 쉬면서 삼시세끼 뭘 만들어 먹어볼까’하는 내면의 욕망을 부추킨다. 또 한편으로는 삼시세끼를 잘 찾아 먹는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삶의 부분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만든다. 나아가 도시에서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뛰어다니는 자신이 과도한 물적 욕망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삶의 회의마저 들게 한다.

삼시세끼에는 틀박힘에 대한 반전이 있다. 전통적인 남녀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져버렸다. 바로 ‘요리하는 중년의 멋진 남자’다. 그는 여자들도 힘든 수준급 요리를 척척 만들어낸다. 그것도 최고의 영화배우 차승원이다. ‘신기’에 가까운 요리퍼레이드가 매회 펼쳐진다. 생선구이와 매운탕, 어묵, 해물찜, 베이커리 등 그는 못하는 게 없다. 요리솜씨에 놀란 나PD마저 그를 ‘차줌마’라 칭했다. 반해 유해진은 요리는 서툴지만 ‘바깥양반’ 역을 하는 책임있는 가장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온종일 바닷가에 서서 물고기 한 마리 못잡고 가족 저녁끼니 걱정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오늘날 고된 ‘아버지’를 패러디한 듯 애틋한 가족애마저 느껴진다.

여기에다 배우들의 페르소나 반전도 있다. 차승원과 유해진 모두 강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누구보다도 강했던 배우다. 그런데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고 식칼을 들고 있다. 여기서 차승원은 더 이상 ‘조폭’이나 형사가 아닌 셰프로서 이미지 반전을 한다. 악역을 주로 맡았던 유해진은 ‘바깥 어른’으로 등장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 책임감, 그리고 포용심까지 잘 드러난다. 젊은층 시청자들 사이에는 삼시세끼가 ‘동성애 코드’가 담겨있는 것 아니냐고 평할 정도다.



삼시세끼에서 의인화도 주요코드의 하나다. 어촌편에서도 강아지 ‘산체’와 고양이 ‘벌이’가 등장한다. 두 동물 모두 의인화된 주요 출연자다. 자막은 그들의 언어였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인간적 감정을 자막으로 표현해낸다. 별 의미없는 동물의 동작일진대 감정표현을 세심하게 그려내는 연출력이 돋보였다.

동물의 의인화에 ‘동성애 코드’ 내재화

5편에서는 어린이도 등장했다. 어린이는 ‘착한 남자’ 손호준, 그리고 애완동물과 앙상블을 이룬다. 어촌계장의 어린 아들의 눈은 삼시세끼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그의 눈에 비친 차승원과 유해진, 손호준의 어촌 일상은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동심은 삼시세끼에 명배우들의 질그릇 같은 어촌의 느낌을 잔잔하게 불어넣는다.

삼시세끼는 단순한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방송)이 아니다. 가족애가 녹은 남자셰프의 생활프로그램이다. 비록 부족하고 소박한 찬거리이지만 가족을 위한 정성을 들일 때 맛있는 한끼가 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방송에 나온 맛있는 집’이란 상술이나 먹거리에 대한 출연자들의 과도한 방송용 리액션에 시청자들이 이미 싫증날대로 나있다는 점을 제작진은 꿰뚫어 보았다.

삼시세끼를 보면 ‘나도 요리를 해볼까’라는 마음이 생긴다. 남성 시청자들도 얼마든지 가족 누군가를 위해 셰프가 되어보고픈 생각을 갖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요리는 여자들만이 하는 숙명적 가사노동이 아니라 즐겁고도 행복한 삶의 일상이라는 점도 깨닫게 한다. 차승원이 중간중간에 딸 예니(6)와 정겨운 휴대폰 통화를 하는 모습에서 ‘친구같은 아빠’의 가족애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배우 남편이 요리해주는 한끼’. 많은 여성들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삼시세끼 밥짓고 지겹게 설거지하는 일은 그동안 여성들의 몫이었다. 유교문화의 가부장제 전통이 낳은 의식의 산물이다. 그러한 고정관념의 틀은 이제 급속히 깨져나가고 있다. 수평적 관계의 가족애에 기반한 관심과 배려, 포용이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정관념의 파괴 및 작위성 제거 … 힐링과 휴식의 코드화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픈 주말 저녁. 힐링과 휴식, 가족과 함께 있는 편안한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시간대다. 삼시세끼는 그런 시청자들의 내면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바로 매주 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는 이유다.

삼시세끼는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와 다르다. 주말이면 수많은 채널마다 먹방에 쿡방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저기 ‘말의 성찬’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삼시세끼에는 주말예능프로의 현란함이나 시끄러움, 더욱더 작위성(作爲性)은 없다. 가족끼리 편안하게 웃고 느끼면 그뿐이다. 그런데 여운은 길게 남는다. 이것이 삼시세끼가 갖는 생명력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백화점 진열대에 놓인 도자기가 아니라 장독대에 놓인 질그릇을 보는 듯한 투박함을 준다. 출연자조차 ‘우리 이거 왜 하는거야?’ ‘왜 이리 생고생하지?’라는 푸념을 한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화면속 문화코드를 읽으며 해석하고 공감하며 이내 몰입한다. 그것은 제3자 관찰자 시점에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불러온 연출력의 힘이다.

누구나 단조로운 일상이 힘들고, 따분하고,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고 무료한 내 자신의 일상을 방송카메라로 다시 들여다본다고 생각해보자. 똑같은 일상적 행위라도 내 스스로 가족애와 배려, 이해, 포용으로 살아간다면 누군가 나에게도 박수를 보낼 지도 모를 일이다. 삼시세끼는 평범한 나의 일상도 얼마든지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음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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