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⑨아카데미상 유감(遺憾) 기사의 사진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은 33세의 ‘신예’ 에디 레드메인에게 돌아갔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인 애드리언 브로디(30세, 2003년)보다는 늦지만 신예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그가 이제껏 출연한 작품 수나 내용을 보면 그렇다.

사실 어떤 배우에게든 오스카상, 그것도 주연상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 이상 가는 영예도 없다. 더욱이 젊은 배우에게 황금빛 번쩍이는 오스카 트로피는 전도를 더욱 유망하게 해주는, 찬란한 앞날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1955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 프론트’로 수상한 말론 브랜도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그 후 한때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승승장구, ‘연기의 신’으로 불리면서 두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상, 특히 아카데미상 같은 대상은 그 무게감으로 인해 속박의 굴레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들이 갑작스러운 지위 상승으로 인해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연인과 결별하는 비율이 높아지더라는 ‘아카데미상의 저주’라는 속설을 입증한 연구 결과도 나와 있지만 그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적 경력(professional career)과 관련해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 한 예가 1985년에 수상한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궁정음악가 살리에리를 워낙 탁월하게 연기한 덕분에 주인공 모차르트로 분한 전도유망한 젊은 배우 톰 헐스를 밀어내고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 탓에 그의 앞길은 막히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마데우스’ 이전까지 에이브러햄은 외모나 풍기는 분위기 등으로 인해 조연급 배우로서 그나마 악당 같은 역할을 주로 맡았었는데-이를테면 ‘아마데우스’ 직전에 나온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83년작 ‘스카페이스’에서는 남미 마약상의 부하로 헬기에서 떠밀려 살해당하는 조무래기 악당역이었다-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음에는 주연급, 그것도 점잖거나 멋진 주인공 역할을 기대하는 자타의 압력 때문에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스카상 수상 후 에이브러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 같은 고민에 빠져 나아갈 길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한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이는 앞서 1956년 델버트 만 감독의 ‘마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대조적이다. 보그나인 역시 퉁방울눈에 주먹코 등 우락부락한 외모 탓에 그때까지 주로 악역 전문 조연으로 활동하다가 예외적으로 순진한 노총각 마티 역을 맡아 전혀 예상외의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때까지의 오스카 역사상 가장 의외의 수상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보그나인은 그처럼 엄청난 명예를 안고도 나아갈 길을 수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외모나 영화 속 캐릭터로는 게리 쿠퍼나 윌리엄 홀든 같은 이전 수상자들과 같은 멋진 주연을 연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악역이든 뭐든 조연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사상 최강의 조연’이라는 일부의 평가와 함께 비록 조연이라 해도 작품에 무게를 실어주는 존재로서 평생 동안 영화와 TV에서 맹활약했다.



물론 레드메인은 에이브러햄과 다르다. 레드메인이 만일 ‘오스카상의 함정’에 빠진다면 에이브러햄보다는 1978년 허버트 로스 감독의 ‘굿바이 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리처드 드레이퍼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브랜도처럼 31세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드레이퍼스는 그 후 젊은 나이에 벼락출세한 중압감에 치여 제대로 된 영화에 출연하지 못한 채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거의 폐인이 될 뻔했다. 다행히 위기를 넘겨 재기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제껏 출연했던 적지 않은 영화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75년작 ‘죠스’에 나온 상어 전문가 정도로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아카데미상이 경력이 일천한 젊은 배우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카데미상은 본질적으로 ‘연기상’이다. ‘업적상’이나 ‘공로상’이 아니다. 연기가 출중하면 나이에 무관하게 상을 받는 게 옳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상이 젊은 배우들의 앞날을 방해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좀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한두 편의 작품에서 보여준 ‘반짝 연기’가 아니라 좀 더 긴 기간을 두고 이루어진 ‘평균적인 연기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통해 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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