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⑩ 떨어진 별들, 추억에 새기다 기사의 사진
지난달 열린 87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눈길을 끈 것들 중 하나가 ‘인 메모리움(in memorium)'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코너였다. 2014년에 타계한 영화계 인사들의 면면을 소개하며 추모하는 내용이었는데 무심코 그냥 지나가기에는 아쉬운 배우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로빈 윌리엄스라든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같은 거성들에 가려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화팬이라면 잊지 못할 이름들. 제임스 가너, 루이 주르당, 일라이 월라크, 비르나 리지, 애니타 에크버그.

제임스 가너는 잘 생긴 얼굴에 당당한 체구를 지닌 호남으로 적지 않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스타였다. 올스타 캐스트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화면을 채웠던 존 스터지스 감독의 2차대전 영화 ‘대탈주(1963)’에서 스티브 맥퀸과 함께 공동주연으로 이름을 날렸고, 나중에는 서부극 ‘매버릭(1994)’에서 주인공 매버릭으로 나온 멜 깁슨의 아버지 역으로 국내 젊은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실은 가너야말로 오리지널 매버릭이었다. 즉 그는 원래 1957~1960년에 방영된 TV 코미디 서부극 ‘매버릭’에서 프로 도박사 매버릭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나중에 거의 카메오 수준으로 매버릭 영화에 출연한 것이었다.



루이 주르당은 영어식으로 읽으면 루이스 조던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불린 프랑스 출신 배우였다. 같은 나라 출신 선배 샤를르 부아이에와 마찬가지로. 루돌프 발렌티노로부터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에 면면히 이어져온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출신 로맨틱 가이들의 계보인 이른바 ‘라틴 러버(Latin Lover)’중 한사람으로서 뒷날 007영화 ‘옥토퍼시(1983)’에서 악역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한때 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로맨틱한 미남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출연작 가운데서는 레슬리 캐론과 함께 나온 ‘지지(1958)’가 유명했다.



일라이 월라크(Eli Wallach)는 그의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에서는 ‘엘리 왈라치’로 잘못 표기되기도 한, 상대적으로 스타성이 약한 조연 전문이었으나 한마디로 못하는 역할이 없는 ‘만능배우’였다. ‘황야의 7인(1960)’과 ‘속 석양의 무법자(1966)’의 멕시코 악당에서부터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까지 어떤 역할을 맡겨도 잘 해내는 믿음직한 배우로서 스크린과 TV는 물론 연극무대에서까지 종횡무진 활약했다.



비르나 리지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소피아 로렌,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지나 롤로브리지다 같은, 풍염(豊艶)을 생명으로 하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출신 글래머들과는 달리 그레타 가르보나 로미 슈나이더처럼 북유럽이나 독일 출신의 차가운 아름다움을 지닌 미인이었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계 영화계에는 내로라하는 미녀들이 득실거렸지만 비르나 리지만한 미녀도 드물었다. 어찌 보면 재능을 미모가 덮은 케이스였다. 우리나라에는 알랭 들롱과 공연한 ‘흑튤립(1964)’과 앤서니 퀸과 공연한 ‘25시(1967)’가 많이 알려져 있다.



애니타 에크버그는 비르나 리지와는 정반대다. 스웨덴 출신이면서도 마치 이탈리아 여배우들처럼 풍만한 섹스심벌로 자리매김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크버그가 가장 널리 이름을 떨친 작품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즐거운 인생(La Dolce Vita 1960)’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소속사인 ‘파라마운트의 매릴린 먼로’로 홍보되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007영화 ‘위기일발(1963)’에 본의 아니게 한 장면 출연한 사실. 즉 제임스 본드가 터키에서 한 밤중에 라이플로 영화관 광고판에 매달린 알바니아 악당을 저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광고판 여배우의 입에 뚫린 구멍으로 기어나오는 악당의 배경으로 사용된 광고판 여배우의 커다란 얼굴이 애니타 에크버그였던 것.



이처럼 한때를 풍미한 배우들이 세상을 뜨는 것을 보면서 한 개인이 아닌,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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