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문화비평]  ‘웃프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풍들소’ 풍자극 通할까 기사의 사진
막장 아닌 새로운 장르의 ‘신선한 도발’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블랙코미디’

SBS가 2월 하순 시작한 30부작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를 소개한 내용의 일부분이다. 극단적인 빈부차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임을 암시했다. ‘제왕적 권력’ ‘초상류층의 속물’ ‘통렬한 풍자’ ‘블랙코미디’라는 단어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막장드라마 외엔 살아남긴 어렵다는 게 요즘 방송가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막장극이 아닌 풍자와 은유의 ‘블랙코미디’물을 선보이는 자체가 신선한 도발이라 할 수 있다.

<풍들소>는 jTBC의 히트작 <밀회>를 제작한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 두 콤비가 만든다. 더욱이 케이블이 아닌 지상파에서 첫선을 보였다는 점에서 초반부터 관심을 끌었다. 지난 3일 방송된 4회분 평균 시청률은 8.7%(닐슨코리아), 7.9%(TNMS). 지지부진한 월화 및 수목 주중 드라마 시장에서 그다지 나쁘진 않은 런칭이라 볼 수 있다.

<풍들소>는 블랙유머를 곳곳에 깔고 있다. 전형적인 블랙코미디 구성이다. 장면마다 웃기면서도 슬프고, 또한 무섭다. 블랙코미디는 반어적이고 대립적이다. 사전적 의미로 블랙코미디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로서 냉소적이며 음울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유머감각에 기초한다’. 아닌게 아니라 <풍들소>는 첫 회부터 웃고 또 웃지만 뭔지 아련함이 배어있다. 이런 것을 ‘웃프다’고 하나.

먼저 <풍들소>는 강력한 이항대립으로 시작했다. 재력과 권력, 세습, 학벌, 지위, 명성 등 한국사회에서 인간을 평가하는 외적 척도가 극명하게 엇갈려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상류층과 하류층’ 식의 분명한 이항대립은 초반에 갖가지 ‘문명의 충돌’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물과 불의 극단적 환경에서 미성년 자녀들의 출산이란 불가항력이 끼어들면서 갖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부와 혈통, 학벌이 고스란히 세습될 초상류층의 법무법인 대표의 가정은 철부지 아들의 ‘일탈’로 풍비박산이 난다.



혼맥으로 얽힌 초상류층의 끝없는 욕망,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의 토대

한국사회에서 법조와 재력의 결합은 정치권력까지 좌지우지한다. 초상류층은 혼맥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끝없이 욕망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결코 드러나서는 절대 안되는 금기영역이다. 인사청문을 하는 국무총리 인선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사를 터뜨리려는 주간지 편집장을 얼러대며 굴복시키는 ‘보이지 않는 위력’은 이상하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런 한정호 부부이지만 자식만큼은 마음대로 안되는 상황이 실소마저 금치 못하게 만든다. 이상하게 가공의 스토리일진대 결코 픽션이 아닌 듯 시청자들에게 몰입을 강요한다.

먼저 드라마 출연자들이 간만에 신선함을 준다. 인기가 있다 싶으면 종방과 동시에 다른 드라마에 얼굴을 내미는 ‘닥치고 출연자’들이 없다. SBS ‘별에서 온 그대’에 특별출연했던 유준상이 오랜만에 법무법인 대표 한정호로 출연했다. 코믹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웃음유발자’답게 첫회부터 흐름을 주도했다. 내면의 속물근성을 애써 감추려는 상류층 지도층의 강박이 마치 의식(儀式)처럼 자연스레 녹아있다. 유준상 스스로 황당한 상황에서도 애써 품격을 갖추려 무던히 애쓰는 그의 진중함이 더해질수록 웃음은 배가된다. 그의 캐릭터는 강한 이중성으로 빛을 발한다. 그의 아내 최연희 역을 맡은 유호정 역시 상큼한 매력과 신선감을 불어넣는다. 그는 상투적인 상류층의 예의 범절이 몸에 쩔어있는 가식적 존재로 등장한다.

한정호 부부는 치미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절제할 줄도, 튀어나오는 천박한 언어를 정제할 줄도 안다. 그들은 가식의 초상류사회에서 조금도 흠 잡힐 것도 없고, 흠 잡혀서도 안되는 강박의 포로이다. 나아가 자신의 속내를 결코 들켜서도, 드러내서도 안된다. 그러한 금권을 쥔 그들은 일상적인 최상류층 매뉴얼을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아이돌 출신 이준과 청순매력의 고아성의 연기력도 한몫 한다. 이준은 한국최고의 법무법인 대표인 한정호의 아들 한인상 역, 영화 <괴물>에서 강한 여운을 남겼던 고아성은 가난한 집안의 여고생 서봄 역을 맡았다. 눈에 띄는 출연자도 있다. MBC 아나운서 출신 백지연이다. 연기자로 첫 변신했지만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차갑게 맺고 끊는 재벌가 귀족녀의 쿨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 재계 2위 대승그룹 장회장의 아내이자 최연희의 대학동창 지영라 역을 맡아 열연중이다.



혼외 아기의 첫 울음이 초상류층의 가식과 기만,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

모든 인간사를 법률관계로 비틀며 부를 축적해온 법무법인의 한정호 대표. 아들 역시 일류대에 들어가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대물림의 코스가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가능했고, 심지어 아들의 사랑마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한정호 부부의 기대는 산산조각난다. 수능을 준비하던 엘리트 고교생 한인상이 동갑내기 일반고 출신의 서봄과 몰래 사귀다 ‘대형사고’를 쳤다. 인상이 결국 만삭의 서봄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장면부터 블랙코미디는 시작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은 모든 것을 뒤바꾸어버렸다. 모든 것을 가진 초상류층의 ‘노블리쥬 오블리쥬’는 가면뒤의 허울과 위선을 무너뜨려버린다. 약자를 위하는 듯한 가진 자의 기만, 웃음속에 가려진 매몰찬 위선, 자선 뒤에 숨겨진 극한 이기심, 지식과 원칙에 깔린 반(反)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돈과 법으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려는 한정호 부부의 관성적 시도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안판석 PD는 여기서 무언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진다. 초상류층의 엄숙과 진지, 세련에서 오히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매순간 여과없이 보여준다. 법 만능을 외치는 한정호의 한마디는 권력과 금력으로 무장한 초상류층 갑질의 약탈적 사고가 엿보인다.

풍자와 은유는 블랙코미디의 핵심요소다. <풍들소>의 무대인 구중궁궐같은 한정호의 자택. 하인들이 여기저기 도열한 광활한 그곳은 금권과 재력의 상징이다. 아울러 기와집은 대물림을 암시한다. 영화용 레드원 카메라가 묵직하게 돌아가는 이같은 세트장은 또 하나의 ‘은유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철부지 아들의 뜻밖의 일탈이 ‘가슴 뻥뚫리는’ 카타르시스

드라마 4회분 끝 장면. 감춰진 블랙코미디의 복선들을 암시한다. 금력과 권력을 거머쥔 부모였지만 철부지들의 사랑을 끝내 막지는 못했다. 부모들의 무한욕망에 더 이상 포박당하지 않겠다는 한인상과 서봄의 선언은 ‘가슴 뻥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시청자들에게 던져준다. 마치 극단 양극화의 단절의 벽을 허무는 소설속 상징과 같다.

동사무소로 달려간 한정호와 최연희. 오히려 미성년 혼인신고를 막지 못하고도 통곡을 하기는커녕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흔쾌히’ 혼인을 인정한다.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 얽혀 자신들의 욕망과 본능을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이율배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시청자들에게 쓴웃음을 안긴다.

<풍들소>의 성패는 해학과 풍자에 달려있다. 몸개그가 아닌 통렬한 풍자가 있는 <개그콘서트> 코너에 관객들이 더욱 공감하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시청자들은 <풍들소>를 결코 픽션으로만 보지 않는다. 픽션이라 해도 논픽션이라 여길 만큼 우리사회 양극화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초상류층의 갑질은 사회적 약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깊이 패여있다.

<풍들소>가 금력과 권력이 뒤엉킨 우리사회 초상류층의 속살을 어떠한 풍자와 은유로 이끌어갈 지 관심사다. ‘참을수 없는 가벼움’을 통렬하게 풍자한 블랙코미디물이 될지, 아니면 단발의 코믹만 반복하는 지루한 부조리(不條理)극이 될지 궁금하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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