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비판한 김영란] “이해충돌방지 규정 삭제·부정청탁 범위 축소 아쉽다” 기사의 사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에 제안한 이 법에는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얽힌 직무를 맡지 못하게 하는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쏙 빠졌다. 이 때문에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던 원래 이름도 바뀌었다.

김 전 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아쉽다”며 가장 먼저 이해충돌방지 규정 삭제를 지적했다. 금품을 받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게 한 점, 법 적용을 받는 가족과 부정청탁 범위를 축소한 점, 국회의원의 부정청탁 여지를 남겨둔 점 등을 ‘후퇴’로 봤다.

①“반부패 정책 핵심 빠져”

당초 원안(입법예고안)에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규정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 등 수수 금지와 함께 김영란법을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장관이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공공기관장이 친척 회사에 공사발주 특혜를 주는 식의 사익 추구를 막는 규정이다. 공무원이 가족의 행정민원을 직접 처리하지 못하게 막는 기능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형이 재판장인 재판부에서 변호사로 선임됐거나 당사자로 재판받는 경우 등을 피하도록 해 이해충돌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안 설계자인 그의 입장에서 이 규정이 빠진 김영란법은 반쪽짜리 법이다. 그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는 반부패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함께 시행돼야 하는데도 분리된 채 일부만 국회를 통과했다”며 에둘러 비판했다.

②“왜 직무관련성 따지나”

김영란법은 100만원 이하 금품을 주고받았을 때에는 직무관련성이 있어야만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1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불문하고 처벌한다. 당초 원안은 금액과 직무관련성을 따지지 않았다. 금품을 주고 받았다는 것만으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했었다. 김 전 위원장은 직무관련성을 요구한다면 형법상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만 못하다고 봤다. 그는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대가성이 없고 금액이 아무리 적다더라도 뇌물죄를 물을 수 있다. (지금 김영란법은) 결국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에 과태료만 부과하겠다는 것이어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③“가족 범위 너무 협소”

법 적용을 받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것도 문제 삼았다. 원안이 규정한 가족은 배우자, 직계혈족(부모·자녀),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광범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들의 자녀와 형제 등이 문제가 됐던 사례를 돌이켜보면 규정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배우자로만 축소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가족이 금품을 받았을 때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신고하도록 한 것도 못마땅한 부분으로 꼽았다.

④“부정청탁 개념 축소”

원안에서 부정청탁은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 행위’로 명시됐다. 공무원에게 부정하게 민원 처리를 부탁하는 여러 경우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국회는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며 이 부분을 들어냈다. 대신 부정청탁의 15가지 유형이 열거됐다. 구체적 유형을 제시하고 여기에 해당할 때만 처벌하자는 취지다. 원안과 비교하면 부정청탁의 범위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 규정의 근본 취지는 매사에 일만 생기면 유력자 등을 찾아가 청탁하는 고질적 제3자 청탁풍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자는 데 있다”며 “원안은 광범위하게 제3자 부정청탁 사례를 방지하고자 한 것인데 그 범위가 축소됐다”고 했다.

⑤“국회의원 브로커화 우려”

국회를 통과한 현재의 김영란법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다른 사람의 고충민원을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것은 부정청탁이 아니라는 예외를 뒀다. 원안에 없던 내용을 국회의원들이 만들어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법을 손질하면서 자신들은 가급적 적용받지 않도록 빠져나갈 길을 만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 전 위원장도 “제3자의 고충민원이라 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이권청탁, 인사청탁 같은 부정청탁이 포함될 수 있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의 브러커화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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