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7. 김영란법과 박병엽의 꿈과 좌절 기사의 사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서울 서강대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가방끈 짧고 빽 없는 촌놈이 기댈 것은 몸뚱아리밖에 없다”

뚝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이 회장님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부회장이다. 이 회사에는

‘회장’ 자리가 없다. 아직 회장 자리에 오를 만큼 이뤄놓은 일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

고, 두 번째는 존경하는 아버지를 위해 비워둔 자리다.

남들이 회장님은 뭐 하시냐고 물으면 “노신다”는 게 돌아오는 답이다.

10년 전 인터뷰를 할 때 그는 “매출이 10조원을 넘고 나이가 50줄에 들어서 어엿한 경영인으로 인정받으면 그 때 가서나 회장 직함을 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회장 직함을 쓰지는 못했다. 그의 부친 역시 10년 전 세상을 달리해 ‘회장’ 자리에 앉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현대판 영웅’ ‘의리의 사나이’.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1991년 10평짜리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처가에서 빌린 돈 4000만원과 직원 6명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무선호출기(삐삐)로 시작해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과 LG 등 국내 1, 2위 재벌이 다투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한 때는 2위를 넘보기도 하고 세계 7위 업체로 도약하기도 했다.



박 전 부회장을 한 번 만나본 사람은 그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에 빠진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단 번에 ‘형님’이라고 부른다.

인터뷰를 하자고 했더니 “무슨 인터뷰냐”며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그의 단골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돈 없고 줄 댈 곳 없는 벤처기업이 한국 기업 풍토에서, 대기업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얼마나 힘든지 푸념이 쏟아져 나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 인터뷰가 끝나자 국회로 달려간다고 했다. 휴대전화 기술유출 혐의로 연구원이 구속됐는데 그를 빼내려면 아는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통사정하고 매달리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몇 년 뒤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 회사 근처 여의도 식당에서 박 전 부회장을 또 몇 차례 만났다. 초기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시절, 주말 없이 일하면서 한 번은 일하던 점퍼 차림으로 상암동에서 달려오기도 했고, 언젠가는 그의 고향 음식인 남도굴비를 앞에 놓고 저녁을 함께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뒤 그가 겪은 고초는 컸다. 호남 출신이다 보니 노무현정부 시절 급성장한 배경을 파헤치겠다며 오만 군데서 조사를 나왔다.

힘깨나 쓴다는 기관들이 들이닥치면서 좌파정권과의 연결고리를 캐기 위해 ‘탈탈’ 털었지만 맨손으로 시작한 회사다 보니 별 수확이 없었나보다.

살아있는 권력의 서슬퍼런 ‘칼날’에도 살아남았지만 팬택은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두 번의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혹독한 구조조정과 신제품 개발로 오뚝이처럼 살아났던 팬택은 결국 매각될 처지에 놓였고, 최근 두 차례 매각마저 무산됐다고 한다. 3차 매각마저 성사되지 못하면 청산될 위기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팬택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뒷배를 챙기고 있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 또한 씁쓸하다.

김영란법은 불편하더라도 거쳐가야 할 ‘투명사회’ ‘공정사회’를 위한 초석이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진작에 생겼다면 팬택 같은 벤처기업들이 대기업들과 좀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정부에, 국회에 로비를 하러 다닐 때 돈 없고 ‘빽’ 없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은 불공정한 ‘링’ 위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

“회사가 망하면 나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어차피 빈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트럭 하나 사서 떡볶이 파는 장사부터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불쌍하다. 대기업보다 우수한 친구들이 많은 데 이건 너무 공정하지 않다”

박병엽 전 부회장은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우수한 인재들을 빼가고, 아이디어를 빼앗으며 독식하는 한국 기업 풍토를 얘기할 때마다 울분을 터트리곤 했다.

대학을 중퇴한 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아버지의 창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것이 애플의 시작이었다. 우리 같은 기업 환경이었다면 애플은 결코 세계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같지만 선거 때마다 돈 봉투가 나돌고, 대기업들이 차떼기로 대선자금을 갖다 바치던 것도 불과 10여년 전이다.

치부를 고백하건대 언론 환경도 우리 사회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IT업체의 행사 취재를 위해 홍콩과 대만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그렇듯 중국 기자들이 수십명 모이니 시끌시끌했다. 열심히 질문을 해대던 중국 기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빨간 봉투를 하나씩 들고 사라졌다. 주최 측 업체에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중국 기자들에게 준 ‘촌지’란다. 지금은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악습이 남아있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한심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이 이 정도나마 깨끗해진 것도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어느 회장님은 해외 출장에서 통 크게 쏘기도 했고, 형제의 난이 한창이던 어느 기업은 기자들에게 자기 편에 유리한 기사를 부탁하기 위해 골프연습장 비용을 대주거나 거금을 건네려고 해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어느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골프장에서 하기도 했다. 골프채를 잡아보지 못했던 시절, 기사에 물 먹기 싫어 골프연습을 해서 보름 뒤 기자간담회에 가겠다고 했다가 “볼도 못 치면서 골프장에 가는 건 민폐”라는 선배들의 만류에 포기하기도 했다.

공직자의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한 김영란법은 시행돼야 옳다. 언론인과 사립교원까지 범위를 확대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투명사회, 더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될 거라는 점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칭찬한 ‘김영란법’을 이제 와서 후퇴시킬 수는 없다.

이명희 국제부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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