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⑪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배우 기사의 사진
지난번 글에서 비르나 리지에게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찬사를 바쳤으나 실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배우’는 따로 있다. 물론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글쎄, 어쩌면 동의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세월 따라 변하더라는 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 혹은 여배우가 또 있을까 하고 한숨쉬며 찬탄해마지 않던 사람은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네 카우프만이었다. 내가 그를 본 게 율 브리너, 토니 커티스와 함께 출연한 ‘대장 부리바(1962)’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중에 영화에서 본 샌드라 디와 올리비아 허시를 섞어놓은 듯한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영화를 보면서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대장 부리바’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5학년 때 내가 처음 혼자 극장에 가서 구경한 영화였기 때문에 더 감격스러워서 예뻐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카우프만은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토니 커티스와 결혼까지 했다. 그 탓에 그렇지 않아도 미워하던 커티스가 더 미워지기도 했다. 잘 생기고 멋진 커티스가 왜 미웠냐고?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새지만 내가 그때까지 본 커티스는 얄미운 역만 골라가며 맡았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대장 부리바’와 ‘바이킹(1958)’에서 각각 율 브린너와 커크 더글러스처럼 사내아이들이 영웅시하는 멋진 사나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역할만 맡은 바람에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던 데다 그 예쁜 카우프만까지 채갔으니 더 미웠던 것.

카우프만 다음으로 내가 가장 예쁘다고 느꼈던 여배우는 ‘세기의 미녀’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다. 물론 나이는 테일러가 카우프만보다 많았고, 배우로 활동한 기간이라든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테일러가 훨씬 많고 빨랐지만 내가 그를 카우프만보다 늦게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리바이벌 상영된 ‘젊은이의 양지(1951)’와 ‘자이언트(1956)’에서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록 허드슨, 그리고 제임스 딘 같은 멋진 사나이들을 사로잡은 그 빛나는 미모는 가히 비교 불가였다. 특히 나중에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그를 봤을 때는 세상에 누가 또 있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는 클레오파트라를 저토록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이와 관련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테일러처럼 포토제닉한, 즉 ‘카메라를 잘 받는’ 생김새는 또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잘 생긴 사람이라도 그 날의 몸 컨디션이라든가 조명(자연광이든 인공이든)의 상태, 촬영 각도 등에 따라서는 마치 현상수배 범죄자처럼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임에도 테일러는 어떤 조명, 어떤 각도, 어떤 몸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름답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완벽한 얼굴이라는 얘기.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객관적인’ 기준에서 볼 때 테일러만한 미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관적인’ 느낌에서는 다르다. 테일러 이후 이런 저런 영화를 섭렵하다보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배우는 또 바뀌었다. 프랑스 출신 카트린 드뇌브로.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세브린느(1967)’와 알랭 들롱과 함께 나왔던 ‘리스본 특급(1971)’ 등에서 본, 프랑스 인형 같은 드뇌브의 모습은 여자가 저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하는 기묘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기품이나 품위 같은 것도 같이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느낌은 프랑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프랑스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여인상 '마리안느(Marianne)‘의 모델이기도 했다.



이처럼 내 인생에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 또는 여배우는 모두 서양사람들이었다. 사실 미의 기준이 서구화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미인이라 하면 대부분 서구화된 얼굴들이 꼽혔다. 그러나 요즘 와서 묘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아닐지 몰라도 ‘아름다운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얼굴은 카우프만도, 테일러도, 드뇌브도 아니다. 최은희 선생이다. 우리나라에도 미녀 배우들이 숱하게 많지만 젊은 시절의 최은희 선생 같은 미모는 없다는 생각이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나이 든 선생의 모습만 봐서 실감이 안 나겠으나 ‘지옥화(1958)’ ‘사랑손님과 어머니(1961)’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젊은 시절 선생의 아름다움을 TV로라도 보고 기억하는 이들은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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