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⑫검은 제임스 본드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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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를 보다가 재미있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남녀의 대화였는데 좀 더 젊은 쪽이 “브래드 피트처럼 푸른 눈”이라고 하자 나이 든 축이 “나 같으면 폴 뉴먼 같다고 했을 텐데”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나이에 따라 배우를 둔 연상작용도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좀 더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푸른 눈’이라는 말에 즉각 프랭크 시나트라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시나트라는 후년에 미국 연예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든지 미치는 영향력 등으로 인해 ‘회장님(Chairman)'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렸지만 젊은 시절부터 ‘멋진 친근한 푸른 눈(Good Ol‘ Blue-eyes)'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져왔다.

이처럼 무언가를 상징, 또는 대표하는 배우들이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달라지긴 해도. 가령 ‘셰익스피어극’ 하면 떠오르는 배우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로렌스 올리비에다. 폴 스코필드나 알렉 기네스, 리처드 버튼, 그리고 최근에는 스스로 ‘제2의 올리비에’를 꿈꾼다는 케네스 브래너를 꼽는 이들도 있겠지만 역시 미흡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더 많다. 이는 ‘벤허’ ‘엘시드’ 등 대형 서사극(epic)의 단골 주역이었던 찰턴 헤스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는 자칭 ‘올리비에 추종자’이자 사극의 히어로답게 ‘줄리어스 시저(1970)’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972)’를 통해 두 차례나 안토니우스역으로 셰익스피어극에 도전했으나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물며 멜 깁슨이랴.



셰익스피어극은 모든 배우의 로망인 만큼 깁슨도 1990년에 프랑코 제피렐리라는 명감독을 동원해 만든 ‘햄릿’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제피렐리는 앞서 1968년 당시 실제 나이 16세의 신성 올리비아 허시를 발탁해 셰익스피어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 화제작으로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깁슨의 ‘햄릿’은 극 해석도 그렇고 주인공의 이미지도 그렇고 참으로 희한했다. 원래 햄릿은 선택이 요구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번민하는 우유부단한 인물형의 대명사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행동가, 곧 ‘무대포’의 대명사 돈키호테와 대조되는 캐릭터. 그러나 깁슨의 햄릿은 마치 그의 극중 트레이드 마크라 할 ‘매드 맥스’나 ‘리썰 웨폰’의 릭스 형사처럼 강인한 길거리 전사(戰士), 아니면 활극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90년판 햄릿만 본 관객들은 ‘햄릿’ 하면 1948년에 역사상 최고의 ‘햄릿’으로 등극(아카데미 감독, 남우주연상 석권)한 올리비에보다 깁슨을 떠올릴 테니 세대 차를 떠나 이 노릇을 어찌하랴.

하긴 영화를 보다 보면 세대 차나 세태를 느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캐스팅만 해도 그렇다.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등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주인공인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은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했지만 올드 팬 입장에서는 랭던 교수 역으로 그레고리 펙 만한 배우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특히 이미 1966년 ‘아라베스크’에서 국제 첩보음모에 말려드는 교수 역할을 연기했던 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게다. 물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회나 수상한 행크스의 연기력이나 매력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그래도 행크스 자신이 밝혔듯이 그의 ‘롤 모델’은 어디까지나 제임스 스튜어트인 만큼 행크스에게는 랭던 교수역보다는 좀 더 스튜어트적인 역할(가령 ‘워싱턴에 간’ 스미스씨나 ‘멋진 인생’의 베일리씨)이 잘 맞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아주 최근에 ‘당혹스러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뒤를 이어 차기 제임스 본드 역에 흑인배우인 이드리스 엘바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흑인 예수’의 예에서 보듯 이른바 진보적인 사고를 반영한 논의일 테지만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제임스 본드가 스코틀랜드 아닌 아프리카 혈통이라니.

물론 세태가 바뀜에 따라 그간 백인 전유물이었던 역할들이 상당부분 흑인에게 돌아가긴 했다. 인기 있던 TV 서부극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1999년 영화판에서 윌 스미스가 주인공 제임스 웨스트를 연기했고, 전설적인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1966)’를 2012년에 퀜틴 타란티노가 리메이크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제이미 폭스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또 그에 앞서 1990년에는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한 셰익스피어극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덴젤 워싱턴이 아라곤대공 돈 페드로 역을 맡았다. 무어인인 오델로라면 그나마 몰라도 아라곤의 군주를 흑인이 연기하다니 너무 나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흑인 007이라고? 만일 그것이 성사될 경우 앞으로 몇십년 후 ‘스파이’ 하면 백인 아닌 흑인이고, 숀 코너리 대신 이드리스 엘바가 떠오른다고 떠들 영화대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인종 차별을 하거나 낡은 세대라서가 아니라 진보도 좋고 새로운 인물 해석도 좋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최후의 선은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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